에티오피아 터와흐도 정교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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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 기독교의 전래 ===
에티오피아에는 [[4세기]] 티레에서 온 두 형제, 즉 훗날 초대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주교]]가 된 성 프루멘티우스와 아이데시우스에 의해서 기독교가 전파되었다. 이들은 [[악숨 왕국]](에티오피아 북부에 있던 강력한 왕국)의 왕 에자나의 신임을 얻어 [[복음]]을 전하도록 허락받았다. 5세기말경에는 [[단성론자]]들로 보이는 시리아 출신 [[수사]] 9명이 에티오피아에 [[수도원]] 제도를 도입하고 [[성서]]를 [[그으즈어]](고대 에티오피아어)로 번역하는 일을 장려했다고 한다.
=== 칼케돈 공의회 ===
에티오피아 교회는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 로마와 콘스탄티노플의 [[주교]]들이 [[단성론]] 교리를 단죄한 뒤에도 계속 이 교리를 지지한 이집트 [[콥트 교회]]를 따랐다. 7세기, 아랍 [[이슬람]] 교도들의 정복으로 에티오피아 정교회는 이웃 기독교 교회들과의 교류가 거의 끊어졌다. 그 뒤 여러 세기에 걸쳐 혼합된 여러 신조(Creedcreed)들을 받아들였으나, [[예루살렘]]에 있는 에티오피아 수사들을 통해 바깥 기독교 세계와의 접촉을 유지했다.
 
=== 이집트 교회의 영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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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티오피아 제국 ===
에티오피아 북부와 중부 고지대에 사는 [[암하라족]](族)과 [[티그레족티그리냐족]](Tigrinya, Tigray)은 대대로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주요 신봉자들이었으며, 교회의 신앙 형식들과 신조들은 암하라족의 문화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어왔다. 암하라족이 에티오피아 왕권을 장악한 시기에 에티오피아 정교회는 [[국교]]로 선포되었고,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 정권의 바람벽이 되어주었다.
 
=== 사회주의 시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