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굉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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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 생애 초반 ===
한훤당 김굉필은 [[1454년]] [[한성부]] 정동에서 어모장군 행충좌위사직(禦侮將軍 行忠佐衛司直) 김유(金紐)와 한승순의 딸 청주한씨의 아들로 태어나, 집안을 따라 [[달성군]] [[현풍]]으로 이주, 그 곳에서 성장했다. 그리하여 일설에는 그의 고향을 [[대구광역시]]나 [[경상북도]]로 보기도 한다. 만년에는 [[경상남도]] [[합천군|합천]]에 정착했다.
 
영남의 유학자 [[김종직]] 문하에서 수학하던 중 어느날 《소학》의 어느 글귀를 읽고 깊이 감동한다. 이후 [[소학]]을 읽고 스스로 "소학동자"라 일컬었고 평소 학문을 깊이 연구하여, [[길재]], [[김숙자 (1389년)|김숙자]], [[김종직]]으로 이어지는 성리학의 학문 전통을 이어, 성리학에 능하였으며 실천 궁행을 위주로 하는 학자였다.<ref name="글로벌 서울 김굉필"> 《[[글로벌 세계대백과]]》〈[[: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지리/중부지방-남부지방/서울특별시/서울의 사회·문화#김굉필|김굉필]]〉 </ref> 그는《소학》을 행동의 근간으로 삼아 《소학》을 알지 못하고는 학문을 할 수 없고, 사서육경을 알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