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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에는 [[유리 이사금|노례왕]] 9년([[32년]])에 처음 17관등을 정하면서 제1등으로 제정되었다고 되어 있다. 이벌찬 관등과 함께 중앙과 지방의 군사 업무를 맡거나 기밀 정무를 맡아 왕의 정치 자문이 되기도 했다. 《삼국사기》에는 '이벌찬' 다음으로 '서불한(또는 서발한)' 또는 '각간'이라는 이칭이 초기에 많이 쓰였는데, 후기에는 각간이라는 용어로 더 많이 불리게 되었다. 중국의 《양서》 및 《남사》, 《북사》와 《수서》, 《당서》 신라전에는 자분한기(子賁旱支)로 기록되어 있다.
 
《삼국유사》에 인용된 《가락국기》에서는 "계림의 제도를 모방하여 각간, 아질간(阿叱干), 급간(級干) 등의 관직을 두었다"고 가야의 관등으로도 쓰였음을 밝히고 있으며, 또한 신라 말에서 고려 초까지 [[호족]](豪族)들이 스스로를 자칭하는 용어로서 사용하기도 했는데, 고려 말의 학자 [[이제현]]은 고려 왕실의 족보인 《[[성원록]](聖原錄)을 인용하여 [[고려 태조|왕건]]의 외증조부의 이름이 '각간(角干) 두은점'임을 《[[역옹패설]]》에서 밝히고 있다.
 
== 이벌찬에 임명된 인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