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오키아 공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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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 성립과 확대 ===
[[제1차 십자군]] 원정 이전 [[안티오키아]]는 [[셀주크 왕조]]의 총독 야기 산이 다스리던 400여개의 탑과 성벽으로 이루어진 난공불락의 성채도시였다(다만 셀주크 왕조 정복이전부터 그리스인 주민도 많아 [[비잔틴 제국]]은 이곳을 제국 고유의 영토라고 생각해 셀주크 왕조로부터 회복하기를 고대했다). [[제1차 십자군]] 원정 시 [[보두앵 1세]](후에 예루살렘의 왕이됨)와 [[에데사의 조슬랭 1세]]가 십자군 본대에서 떨어져 나와 동쪽으로 진격하여 [[에데사]]를 점령하는 동안 십자군 본대는 남쪽으로 진격하여 [[안티오키아]]를 공격하였다.
 
안티오키아 공략에 활약했던 남 이탈리아의 노르만인 봉건영주 [[타란토의 보에몽]]은 공략중 이 도시의 소유를 공언하여 [[1098년]] [[6월 3일]] 반년간의 포위전 끝에 안티오키아를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오랜 공성전에 지친 십자군은 미친 듯이 안티오키아 성내의 [[무슬림]]들을 학살하였다. 보에몽은 안티오키아를 수도로 삼아 후국을 건설하고, [[십자군]]의 본래 목적이던 예루살렘 공략에는 참가하지 않고, 안티오키아 후국의 확립에 전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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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오키아 후작}}
{{십자군 국가}}
 
[[분류:안티오키아 후국| ]]
[[분류:1098년 설립]]
[[분류:1268년 해체폐지]]
[[분류:십자군 국가]]
[[분류:비잔티움 제국]]
[[분류:옛 후국]]
[[분류:안티오키아 후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