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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낭테르 대학]]이 학생들과의 대립으로 학교를 일시 폐쇄하자 이에 항의하여 [[소르본 대학]]의 학생들이 [[5월 3일]] 광장으로 나온 것을 기점으로 시작된, 파리에서의 학생, 노동자의 시위와 파업은 6월 들어 베를린과 로마로 퍼져나갔다. 학생들의 학교점거가 세계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영국도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학생들의 거센 시위는 서구를 넘어 칠레,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멕시코등에서도 발생했으며, 진압도중 수많은 생명을 잃는 참사를 빚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에서 [[혁명]]의 물결이 넘쳤다. 도쿄 오사카 등 주요대학에서 점거 투쟁이 벌어졌고 미군기지도 습격을 당했다. 미국에서는 [[베트남전쟁]] 반대에 더해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사회운동으로 확대되었다.이같은 일련의 저항은 자본주의 진영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사회주의]] 진영이던 동구의 여러나라에서도 요동쳤다. 68 혁명은 세계적 차원의 혁명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저명한 학자인 [[월러스틴]]은"이제껏 세계적 혁명은 단 둘뿐이었다. 하나는 1848년에, 또 하나는 1968년에 일어났다. 둘다 실패로 끝났지만 둘다 세계를 뒤흔들어 놓았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68 혁명의 시작이 엄밀히 말하면 파리가 아니었다. 이 저항과 혁명의 거대한 흐름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베트남]]전쟁이었다. 베트남 인민들의 제국주의에 대한 가열찬 저항과 투쟁은 전 세계 반전 평화주의자들에게 심금을 울려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68년 1월 구정(설날)대공세로 명명된 대대적인 베트남 인민의 공격은 전 세계 학생과 시민들의 [[반전 운동]]과 [[해방운동]]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고 이는 68 혁명이 사회 [[문화혁명]]으로 국지적인 아닌 세계로 퍼져나가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하지만 시위가 3달 가까이 지속되자 시민들과 언론은 점점 무질서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고, 그 반발심리로 곧 이어진 총선에서는 우파가 대거 득세하게 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것은이것으로 상대주의의 극단화는 정치적 보수주의를 부르게 된다는 역사적 진리를 다시 체험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우리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68 혁명의 주도자는 <신좌파>로 불리듯, 전통좌파와는 차별성을 보인다. 그렇다고 전통좌파의 가치를 배제한 것은 아니고 다양한 가치를 녹여낸 진일보한 좌파의 진화라고 할 수 있다. 신좌파는 전통좌파의 빈부격차의 타파라는 [[평등주의]]를 계승하면서 생태주의, 여성주의, 소수자운동 등으로까지 발전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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