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소 (후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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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원소가 아들의 병을 이유로 출병을 거절한 사건은 한 세력의 수장으로서 너무나 비상식적인 일이었을뿐더러, 일가가 몰살당하거나 포로로 잡혔을 때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던 이전 원소의 행동과도 반대되는 태도였기 때문에 단지 핑계였을 뿐이라고 보는 견해도 많다.<ref>이 직전 [[원술]]이 원소에게 의탁하려던 사건이 있었다. 원소는 공식적으론 [[원술]]의 칭제를 비난하며 역적으로 규정하고 있었으나 한편으론 은밀히 [[원술]]이 망명해 오는 것을 옳게 여겼다는 보이는 기록도 여러 곳에서 보이는데, [[원술]] 진영과 몇 차례의 연락이 오갔던 것은 분명해 보이고 칭제를 고려하는 등 이해에 따라서는 [[원술]]을 받아들일 생각도 있었던 모양이다. [[유비]]는 [[조조]]에게서 파견되어 이를 저지하며 [[원술]]을 방해했었는데, [[원술]]이 죽은 직후 [[조조]]에게 등을 돌려 원소와 손을 잡았다. 원소로서는 [[유비]]를 전적으로 신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아들의 병을 이유로 출병하지 않은 사건은 위서 원소전에만 기록된 일로, 무제기와 곽가전에서는 모두 '원소는 의심이 많으므로 서둘러 군을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ref>
 
곧 본격적인 원소의 남진이 시작되었다. 원소군은 국지전에서 [[안량]](顔良)과 [[문추]](文醜)와 같은 유력 지휘관이 전사하는 등 손실을 입었지만, 사실 전황 자체는 순조로운 원소군의 우위로 진행되었으며 철수를 거듭하던 [[조조]]는 군세를 모아 관도에서 원소를 요격했으나공격했으나, 대패하여 굳게 진영을 지킨다. 원소는 관도를 포위공격했으나 조조군 역시 필사적으로 저항했으므로 3개월 가까이 함락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조조]]가 관도에서 고립되고 전황이 [[조조]]에게 점점 불리하게 되자, 원소의 선동공작이 효과를 거두어 [[조조]]의 세력권 내 여러 곳에서 원소에 호응한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는데, 특히 예주의 경우는 단지 양안군(陽安郡)만을 제외한 모든 군현이 원소에게 호응해 반기를 들 정도였다. 안팎으로 궁지에 몰린 [[조조]]는 패배직전의 위기에 빠졌다.
 
하지만 이때 반전이 일어났다. 당시 원소의 참모 [[허유 (후한)|허유]](許攸)는 자신의 비리가 드러난 것이 두려워 원소를 배신하며 [[조조]]에게 원소군 군량고의 위치 등의 기밀 정보들을 가르쳐 줬는데. 그 결과 오소(烏巢)의 보급기지는 [[조조]]에게 함락당했으며 그 책임 소재를 두고 간부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 끝에 [[장합]](張郃)과 [[고람]](高覽)이 원소를 공격하고 진영을 불태워버린 뒤 [[조조]]에게 투항했는데, 이로 인해 원소군은 대혼란에 빠졌으며 총대장 원소의 생사조차 불분명해졌으므로 사실상 군대는 완전히 붕괴되어 어이없이 괴멸당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