랴오양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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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타 시({{lang|zh-CN|灯塔市}} / 燈塔市)
*랴오양 현({{lang|zh-CN|辽阳县}} / 遼陽縣)
 
==역사==
랴오양(遼陽)은 양평(襄平)으로 불렸고 이 지방 일대를 중국이 지배하던 중 중심지가 되었다。
 
전국시대에 연나라의 요동부의 중심이 되었다. 진(秦)나라는 요동부의 군치(郡治)를 이곳에 두었고 전한 후한의 시대에는 영토가 동으로 확대하여 현토군(玄菟郡)에 속하였다。
 
404년 고구려가 양평(襄平)을 점령하고 요동부로 개명하였다. 당나라는 고구려를 멸하고 설치한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는 후에 소재지를 평양에서 양평으로 옮겼다。
 
[[요나라]] 시대에 요양으로 개명하여 요의 부도(副都,陪都)동경요양부(東京遼陽府)가 되었다。 [[금나라]]도 동경요양부(東京遼陽府)를 부도(副都)로 하였다。이 시기 동경에 있었던 황족 烏禄은 제 4대 황제 [[해릉왕]](海陵王)에 반항하는 세력에 ㅢ해 옹립되어 해릉왕을 멸하고 제5대 황데 세종으로 즉위하여 요양에 백탑(白塔)등을 건설하였다。
 
원나라는 요양 행중서성(遼陽行中書省)을 두었고 명나라는 요동도사(遼東都司)를 이곳에 설치하였다。[[후금]]은 1622년 요양으로 천도하였다가 요양의 교외에 동경성을 쌓았다. 3년후 봉천(奉天)으로 천도할 때 동경성의 목제와 석재가 봉천으로 운반되어 동경성은 폐허가 되었다. 요양은 그 후 요양주로 개칭하고 봉천을 본거지로한 盛京将軍(後의 奉天省)의 아래에 두었다。
 
[[러일전쟁]](日露戦争)시에 1904년 8월에서 9월에 걸친 요양회전의 전장이되었다.
 
{{동북삼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