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크 칸토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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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실베스터 메달]](1904)
}}
'''게오르크 페르디난트 루트비히 필리프 칸토어'''({{llang|de|Georg Ferdinand Ludwig Philipp Cantor}} {{IPA|[ˈɡeɔʁk ˈfɛʁdinant ˈluːtvɪç ˈfɪlɪp ˈkantɔʁ]}}, [[1845년]] [[3월 3일]]~[[1918년]] [[1월 6일]])는 [[러시아]]에서 태어난 [[독일]]의 [[수학자]]이다. [[현대]] [[수학]]의 바탕이 되는 [[집합론]]을 창시한창시하고 것으로[[무한]]에 유명하다대한 연구로 다양한 업적을 남겼다.
 
==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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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1년에 칸토어는 할레-비텐베르크 대학교 교수직을 [[리하르트 데데킨트]]에게 수여하려 하였으나 데데킨트는 이를 거부하였다. 이 때문에 칸토어와 데데킨트는 1882년에 모든 서신을 중단하였다. 칸토어는 [[예스타 미타그레플레르]]와도 서신을 교환하였으나, 미타그레플레르는 1885년에 칸토어의 논문의 철학적 함의에 반감을 표의하였고, 이 때문에 칸토어와 미타그레플레르와의 관계 또한 중단되었다.
 
=== 말년말년과 사망 ===
당시칸토어는 여러[[양극성장애]](조울증) 수학자들에게혹은 비판을[[주요우울장애]]로 받은추정되는 칸토어는정신질환으로 평생 시달렸는데, 1884년에 여러 수학자들과 비판을 주고받다가 깊은 [[우울증]] 증세를 보여 병원에 입원하였다입원한 것이 처음 나타난다. 퇴원한 뒤 칸토어는 수학을 기피하고 철학과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문학에 광적인 관심을 보였는데, 그는 특히 [[철학셰익스피어]]의 작품으로 알려진 것들이 사실 [[윌리엄프랜시스 셰익스피어베이컨]]의 문학에작품이라는 관심을가설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하였으며 수시로 관련 연구에 심각하게 돌렸다몰두하였다. 이후 잠시 회복하여, 1891년에 [[대각선 논법]]을 발표하였다.발표하기도 그러나하였으나, 칸토어의 우울증은신경증은 계속하여 재발하였고, 칸토어는 1899년과 1903년에 다시 병원에 입원하였다입원하게 되었다. 할레 대학교는 칸토어가 정신병원에 입퇴원을 반복하는 와중에도 교수직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1904년에 [[쾨니그 줄러]]는 칸토어의 집합론의 핵심 개념이었던 [[정렬 정리]]의 "반증"을 발표하였다. 곧 이 반증은 심각한 오류를 포함한다는 것이 알려졌으나, 칸토어는 큰 충격을 받았고 신의 존재를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칸토어는 매 2년~3년마다 입원을 반복하였고, 결국 1913년에 [[할레-비텐베르크 대학교]]에서 은퇴하였다.
 
칸토어는칸토어가 평생앓던 앓아오던 정신질환으로 인해정신질환은 특히 말년에 심해져 여러 망상적인 주제에 집착했다집착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자신이 신의 뜻을 지키는 신성한 임무를 가졌으며 다른 학자들이 자신을 고의로 중상모략하고 있다는 망상에 빠지기도 했다. 특히이러한 칸토어는배경에는 실제로 지도교수이던 크로네커가 칸토어에게 반감을 품고 교수직을 얻는 데 훼방놓은 전적이 있었다. 1904년에 [[셰익스피어쾨니그 줄러]] 작품으로칸토어의 알려진집합론의 것들이핵심 사실개념이었던 [[프랜시스정렬 베이컨정리]]의 작품이라는"반증"을 가설에발표하였다. 강하게 집착하였으며이 반증은 심각한 오류를 포함한다는 것이 알려졌으나, 수시로칸토어는 관련 연구에충격을 심각하게받았고 신의 존재를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칸토어는 매 2~3년마다 입원을 반복하였고, 결국 1913년에 [[할레-비텐베르크 대학교]]에서 몰두했다은퇴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1914~1918) 동안 칸토어는 궁핍과 영양 부족에 시달렸으며, 전중에 1918년 1월 6일 [[할레]]의 병원에서정신병원에서 72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 주요 업적 ==
칸토어는 집합 사이의 [[일대일 대응]]의 중요성을 확립하고, [[무한]]과 [[정렬 집합]]을 정의하였으며, 자연수보다 실수가 "훨씬 많음"을 증명하였다. 실제로 칸토어의 정리는 "무한의 무한성"의 존재를 의미한다. 칸토어는 무한 집합에도 그 크기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이 증명에서 대각선 논법을 사용했다. [[초한수]]에 관한 칸토어의 이론은 유명한 수학자들에 의해서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그러나 현대의 대다수 수학자들은 그의 초한수에 대한 결과를 받아들이며, 현재 칸토어의 이론은 수학기초론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초한수]]에 관한 칸토어의 이론은 유명한 수학자들에 의해서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그러나 현대의 대다수 수학자들은 그의 초한수에 대한 결과를 받아들였으며, 현재 칸토어의 이론은 수학기초론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 [[칸토어 집합]]
* [[칸토어의 정리|칸토어 정리]]
 
== 칸토어의 수학어록 ==
* 수학의 본질은 그것이 갖는 자유로움에 있다.
"Das Wesen der Mathematik liegt in ihrer Freiheit"{{언어링크|de}}<ref>Chapter Georg Cantor 1845 – 1918 Volume 1 of the series Vita Mathematica pp 121-128 „Das Wesen der Mathematik liegt in ihrer Freiheit“ Walter Purkert, Hans Joachim Ilgauds,Publis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