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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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정관 18년([[645년]]), 당 태종은 [[고구려]] 원정을 감행하지만 실패하고, 돌아오는 길에 탄식하며 "위징이 지금까지 살아있었으면 나한테 이런 걸음을 하게 하지는 않았을 것(魏征若在,不使我有是行也)"이라며 한탄하고, 부숴버렸던 위징의 묘비를 다시 세우게 했다.
 
태종의 명으로 편찬하게 한 《[[수서 (역사서)|수서]]》의 서론(序論)과 《[[양서 (역사서)|양서]]》, 《[[진서 (남조)|진서]]》, 《제서》(齊書)의 총론(總論) 등 많은 저작을 남겼으며, 그의 발언은 《정관정요》에 대부분 수록되었다. "사람의 인생에 의기(意氣)가 있다면야/구구한 공명(功名) 따위 무슨 문제가 되랴"라는 구절로 유명한 「술회(述懷)」라는 시를 읊었다.
 
== 자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