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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기원전 3000년]]경 첫 목화재배가 이루어졌는데, [[그리스]] [[역사가]]이자 [[철학자]]인 [[헤로도토스]]가 목화씨를 가져와 [[유럽]]의 목화재배마저도 [[기원전 2500년]] 즈음에 이루어졌다. [[인더스 유적]]과 [[안데스 유적]]에서 목화가 발견된 것은 이 때문이라는 일설이 있다. 또 몇천 년이 지난 [[1000년]]부터 [[2000년]]까지 그리스의 [[이리스]]에서 목화솜으로 여러 물건을 만들어 썼는데, 이는 [[십자군]]이 목화에 대해 유럽에 전한 것이다. 결국 그러한 과정이 여러번 반복되면서 [[동아시아]] [[중국|중원대륙]]까지 전파됐다.
 
한반도에 들어온 것은 [[고려 말기]]의 [[문익점]]으로 알려져 있다. [[1363년]]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목화의 실용성을 깨닫고 씨를 가져왔다. 보통 목화가 원나라의 금수품목으로 지정되어 있어서 붓뚜껑속에 몰래 목화씨를 숨겨서 들여왔다는 전설이 있지만, 원나라에서 금수품목으로 지정한 것은 [[화약]]등의 무기류였기 때문에 역사적 근거는 없다.<ref>《우리역사의 수수께끼》1권/[[이덕일]] 지음/[[김영사]]</ref> 문익점은 그 가족들과 함께 목화를 키워 솜으로 실을 뽑아냈다.
 
일본의 경우에는 799년 곤륜인(인도인)이 일본에 찾아왔을시 목화씨를 나눠주어 각지에 재배하게 만들고 재배 방법을 널리 알렸지만 1년사이에 중단되었다고 한다.그 후부터는 면화는 조선에서 수입하였다.재배를 하기 시작한것은 조선보다 느린 16세기 이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