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나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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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나라의 건국과 정책 ===
[[1644년]], 장헌충은 [[쓰촨 성|사천]]으로 전격 진출하여 대부분의 주군현(州郡縣)을 점령 및 장악하였으며, 특히 [[청두 시|성도]](成都)를 공격하여 [[주지주|촉왕 주지주]]([[:zh:朱至澍|蜀王 朱至澍]])를 참살하여 사천 주둔 관련 세력을 넓혔다. 그리고 [[1644년]] [[1월 6일]]을 기하여 국호 몇 연호를 대서(大西)라 하고, 스스로를 "대서황제(大西皇帝)"라 칭하였다. 이에 아울러 성도]]를 대서경(大西京)이라 개칭하고, 서나라의 독자 성향 과거 제도를 실시하여 관직 체계를 정비하는 한편 서나라 독자 성향 관련 화폐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 서나라의 멸망 ===
그러나 [[청나라]]가 [[순나라]]와 서나라를 각각 공격하였다. 결국 [[1645년]] [[4월 24일]] 순나라는 멸망, [[5월 17일]] 이자성은 자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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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 [[1646년]], 당시 [[청나라]] 황족 종실이었던 [[아이신기오로 후거|숙친왕 아이신줴뤄 하오거(肅親王 愛新覺羅 豪格)]]가 이끄는 [[청나라]] 군사가 [[쓰촨 성|서 제국 쓰촨(西 帝國 四川)]]으로 진격하였는데 이에 [[장헌충|서 고진제 장헌충(西 高秦帝 張献忠)]]은 [[청두 시|다시징(大西京)]]에서 청나라 군사에 격렬히 대적 항전하였으나, [[아이신기오로 후거|숙친왕 아이신줴뤄 하오거(肅親王 愛新覺羅 豪格)]]가 이끄는 [[청나라]] 군사의 진격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1646년]] [[12월 20일]]을 기하여 서나라 황제 보위에서 물러나 총리대신 [[손가망]]에게 [[선위]]하였으며 후임 서나라 총리대신 [[이정국 (1620년)|이정국]]이 [[섭정]]하였지만 사실상 폐주 [[장헌충]] [[장군]]은 계속 아랑곳없이 [[청나라]] 군사들과 전투 끝에 [[청나라]] 군사들의 돌진 공격을 견디지 못한 채 불과 7일만에 [[1646년]] [[12월 27일]]을 기하여 [[손가망|서 사제 손가망]]의 폐출과 아울러 서나라의 멸망을 목도하였지만 폐주 [[장헌충]] [[장군]]은 [[쓰촨 성]] 일대를 떠나지 않은 채 자신의 수하이기도 한 폐주 [[손가망]] [[장군]]을 비롯한 [[장헌충]] [[장군]] 자신의 옛 서나라 유장(遺將)들과 군사들을 계속 이끌고 [[아이신기오로 후거|숙친왕 아이신줴뤄 하오거(肅親王 愛新覺羅 豪格)]]가 지휘를 하는 [[청나라]] 군사들을 대적 항쟁하였지만 결국 패망국 폐주 [[장헌충]] [[장군]]은 [[1647년]] [[1월 2일]]을 기하여 [[아이신기오로 후거|숙친왕 아이신줴뤄 하오거(肅親王 愛新覺羅 豪格)]]가 지휘를 하는 [[청나라]] 군사들의 손에 처참히 패배하여 봉황산(鳳凰山)에서 전사하였다. 그러나 [[장헌충]]이 죽은 뒤에도 [[장헌충]]의 유장(遺將)들을 비롯한 옛 서나라 반란군은 일정 세력을 유지하였고 [[1659년]] [[충칭 시|더우청(渝城)]]이 함락될 때까지 [[청나라]]에 저항을 하였다.
 
이듬해 [[1646년]], 당시 [[숭덕제]]의 장자 [[아이신기오로 호오거|호오거]]가 이끄는 청나라 군사가 사천으로 진격하였고 이에 장헌충은 대서경에서 항전하였으나, 이에 견디지 못하고 [[1646년]] [[12월 20일]] 장헌충은 [[손가망]]에게 [[선위]]하였으며 [[이정국 (1620년)|이정국]]이 [[섭정]]하였지만 불과 7일만에 서나라는 멸망하였다.
다른 한편, [[장헌충]](張献忠)은 매우 잔혹하고 난폭한 탓에 무자비하게 살육과 약탈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는 전투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손에 패전한 적장들이 남긴 신분 천한 가노들의 식솔들 가운데에서는 비천한 임산부들과 미천한 어린아이들까지 마구잡이로 참살하였으며, 무법 전투로써 방화와 약탈을 자행하여 백성들로부터 "도부(屠夫)"라 불리었으며 서나라 창건 이후에는 [[쓰촨 성|쓰촨(四川)]]에서도 무자비한 공포 제권 통치가 이루어져 대규모 학살(虐殺)이 공공연히 횡행하는데다가, [[청나라]] 군사들과의 전투 끝에 패망 서국(西國) 폐주 [[장헌충]] [[장군]]이 전사한 [[청두 시|다시징(大西京)]]은 도성 전체가 파괴되어 거의 살아남은 자들이 없을 만큼 황폐되었다 한다. 이는 [[명나라]] 농민 반란군 선봉대의 난폭하고 잔혹한 수석부수장으로 출발하여 이후 서 제국(西 帝國)을 개창하고 서국 용상(西國 龍床)에 등극을 하여 서나라의 방탕한 폭군 황제에까지 오른 [[장헌충|서 고진제 장헌충(西 高秦帝 張献忠)]]의 수치스러운 말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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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멸망 이후 ==
장헌충은 사천 일대를 떠나지 않은 채 손가망을 비롯한 옛 서나라의 제장 및 군사들을 이끌고 호로거의 군사들에 항쟁하였지만 [[1647년]] [[1월 2일]] 처참히 패배하여 봉황산(鳳凰山)에서 전사하였다. 하지만 옛 서나라 반란군은 일정 세력을 유지하였고 [[1659년]] [[충칭 시|투성]](渝城)이 함락될 때까지 청나라에 저항을 하였다.
 
== 서나라의 역대 황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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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 링크 ==
* [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913173 두산대백과사전 - 서 고진제 장 셴중장헌충]
* [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856376 두산대백과사전 - 이자성의 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