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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대외 정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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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외교정책의 수립과 이행에 대한 주된 책임을 [[미국의 대통령|대통령]]이 지게 되어 있으나, [[미국 의회|의회]]도 이에 대해 강한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다. 우선 의회는 전쟁을 선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하원은 대통령의 외교정책 수행에 필요한 예산에 대해 강한 통제력을 가지고 있으며, 상원도 재원에 대한 통제가 가능하다. 특히 상원의 경우에는 고급 외무 관리의 임명에 대한 통제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이 체결하는 모든 조약에 대한 비준권을 가지고 있다. 의회의 이와 같은 제재권한은 행정부와 의회의 갈등을 초래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에드워드 코르윈([[:en:Edward Samuel Corwin|Edward Samuel Corwin]]) 교수는 미국의 정치체계가 외교정책에 있어서 행정부와 의회 간의 투쟁을 초래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 좋은 예로서는 [[상원]]이 국제연맹 헌장의 비준을 거부한 사실을 들 수 있다. 의회와 행정부간에는 긴밀한 협조가 이루어지고 있다. 유엔헌장 비준 당시의 의회와 행정부간의 긴밀한 협조는 너무나 유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협동외교는 한국에서 흔히 사용되고 있는 '초당외교'라는 말과는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 [[베트남 전쟁]]으로 말미암아 파생된 행정부와 의회간의 갈등은 심각한 형편이었다. 그러나 의회가 대통령에 가하는 압력은 행정부의 독주를 견제하는 동시에 건전한 방향의 미국 대외정책을 모색하고 있다. 의회는 국민의 대표기구로서 국민의 의사와 직결돼 있다. 따라서 대외정책의 수립이나 이행 과정에도 항상 의회를 '문제아'로 취급하거나, 또는 그러한 범주내에 의회의 기능을 이해해서는 안 된다.
 
 
=== 내전의 시기 (1849-1865) ===
 
[[미국]]과 일본의 만남은 1853년 7월에 미국의 [[매슈 페리 (군인)|매슈 페리]]의 함대가 일본의 우라가 항에 입항(흑선내항, 黒船来航)하여 미국과의 수교를 요구하면서 시작되었다. 일본의 막부측에서는 갑작스러운 미국의 요구에 즉답하지 못하고 1854년까지 이를 유예하였다. 1854년 1월에 페리의 함대는 다시 돌아왔고 아직까지 대책을 세우지 못했던 막부는 결국 [[미일수호통상조약]]을 조인하면서 양국의 국교가 체결되었다.
 
1898년 미국의 메인 호가 [[스페인령 쿠바]]의 아바나 항에서 정박중에 폭발한 사고로 인하여 발생한 [[미국-스페인 전쟁]]은 미국의 승리로 끝나고, 스페인은 쿠바를 미국에 넘겨주었다. 종전 후 3년 동안 쿠바에서는 미국 군대의 군정(軍政)이 실시되었으며, 1903년에는 관타나모에 미국 해군의 기지가 설치되고 쿠바의 중추적 기능을 미국자본이 장악하는 등 쿠바는 사실상 미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1905년 [[러일전쟁]]의 중재를 맡은 미국은 식민지 [[필리핀]]의 안전을 일본으로부터 보장받기 위해 같은 해 7월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음으로써 조선에 대한 일본의 지배권을 인정하였다.<ref>{{서적 인용 |제목= 지구촌시대 남북한의 외교․안보․통일론 | 저자= 김강녕 |연도= 2010 |출판사=신지서원 |위치= 경주시 |장=오바마 행정부 출범과 한국의 대미외교전략 |쪽=227|id={{ISBN|978-89-5531-188-4}}|인용문= <!--이어 1905년 러일전쟁의 중재를 맡은 미국은 식민지 필리핀의 안전을 일본으로부터 보장받기 위해 같은 해 7월 태프트-카쓰라협약(Taft-Katsura Agreement)을 맺음으로써 조선에 대한 일본의 지배권을 인정하였다.<sup>8)</sup> 8) 백광일, “미국의 대한 안보정책,” 한국정치학회, 『한국정치학회보』, 제16집, 1982, p.197--> }}</ref> 미국과 중화민국은 1911년에 수교하였다. 미국은 [[국공 내전]] 시기와 [[제2차 세계 대전]] 때, 전(全)중국의 합법 정부로서 민국정부(民國政府)를 승인하고 지원하였다.
 
=== 제1차 세계 대전 (1900-1920) ===
 
=== 격동의 시대 (1964-1980) ===
그러나 그와 같은 정책은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에 접어들면서 점차 약화하였으며, '[[닉슨 독트린]]' 이후로 급격히 약화되어 그 형태마저 찾아보기 어렵다. 1969년 "[[아시아]] 각국은 내란이 발생하거나 침략을 받는 경우 스스로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였다. 1969년 1월 닉슨 행정부가 수립된 후 미소관계는 상호협조의 시대로 돌입했다. 선거기간 중 "자신이 당선되면 [[소련]]을 방문하겠다"고 강조한 닉슨 대통령은 취임연설에서 협상시대의 도래를 희망한 후 곧이어 서독, 영국, 이탈리아 등 서구 우방을 순방했다.(1969년 2월) 이 방문에서 닉슨 대통령은 대소협상에 관한 사전 의견교환을 하고 방소 준비를 착실히 진척시켰다.<ref>{{뉴스 인용 |url = 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2122900099204005&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72-12-29&officeId=00009&pageNo=4&printNo=2100&publishType=00020| 제목 = 이것이 미국이다<46> 외교 - 對蘇관계(하) | 날짜 = 1972-12-29 | 출판사 = 매일경제신문|인용문=<!--1969년1월 「닉슨」行政府가 수립된 후 美蘇관계는 相互協調의 시대로 돌입했다. 선거기간 중 『자신이 당선되면 소련을 방문하겠다』고 강조한 「닉슨」대통령은 취임연설에서 協商時代의 到來를 희망한 후 곧이어 西独, 英, 伊 등 西歐友邦을 순방했다. (1969년 2월) 이 방문에서 「닉슨」대통령은 對蘇協商에 관한 事前意見交換을 하고 訪蘇준비를 착실히 진척시켰다--> }}</ref> 더욱이 [[카터]]의 등장 이후 모든 국가에 대한 여행제한 철폐를 비롯한 개방정책이 적극 추진되고 있으며, 무장에 의한 평화보다 협상을 통한 평화외교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ref>《[[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정치/국 제 정 치/세계각국의 정치사정/미 국|미국의 외교]]〉</ref> 전후(戰後)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으로 대립되어 왔던 동서관계는 동구공산권의 붕괴와 소연방의 소멸로 냉전시대가 종식되었다. 탈냉전 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남게 된 미국은 대량 살상무기 확산, 인권개선, 민주주의의 신장, 환경문제 등 새로운 범세계적인 문제의 외교 현안화에 노력하면서 유엔 등 다자협력체제를 통한 해결을 도모하고 있다.<ref name="글로벌 미국 외교1"/><!--한편 전후(戰後)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으로 대립되어 왔던 동서관계는 동구공산권의 붕괴와 소연방의 소멸로 냉전시대가 종식되었다. 탈냉전 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남게 된 미국은 대량 살상무기 확산, 인권개선, 민주주의의 신장, 환경문제 등 새로운 범세계적인 문제의 외교 현안화에 노력하면서 유엔 등 다자협력체제를 통한 해결을 도모하고 있다.-->
 
1979년 1월 1일 미국이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면서 "[[하나의 중국]]" 정책에 따라 중화민국과 단교하였지만, [[타이완 관계법]]을 미국 국내에서 발의하여 중화민국에 대한 안전을 실질적으로 계속 보장하고 있다.
 
=== 현대 (1980-현재) ===
1992년엔 "쿠바민주화법" 통과로 봉쇄정책의 입법화가 이뤄졌다. 미국은 "쿠바가 민주화 이행을 거부하고 인권을 보장하지 않는 한" 쿠바에 대한 통상 제재를 지속하고 있었다.<ref>{{웹 인용|url=http://www.state.gov/www/regions/wha/cuba/democ_act_1992.html|제목=Cuban Democracy Act of 1992|출판사=State Department |인용문=<!--SEC. 1703. STATEMENT OF POLICY. ... It should be the policy of the United States -- ...6. to maintain sanctions on the Castro regime so long as it continues to refuse to move toward democratization and greater respect for human rights;--> |보존url=https://archive.is/KlHx|보존날짜=2012-08-05}}</ref> 베트남 정부가 폐쇄적인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문제점을 깨닫고 개혁개방정책을 편 이후 미국 기업인과 언론이 베트남과 관계를 개선하라는 압력을 넣자 1994년 2월, 클린턴 행정부는 마침내 1975년 이후 계속되어 왔던 베트남에 대한 무역금지조치를 해제했다. 1995년 1월 양국간에 상호연락사무소가 개설된 데 이어 동 7월 11일에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졌다. 1996년엔 극우 성향의 제시 헬름스 당시 상원 외교위원장(공화당) 주도로 "쿠바 자유화 및 민주화연대법"([[헬름스-버턴법]])이 통과돼 미국 자본의 쿠바 투자가 사실상 봉쇄됐다. 조지 부시 행정부 시절엔 쿠바 출신 이민·망명자들의 "본국 송금"조차 사실상 차단되기에 이르렀다.<ref>{{웹 인용 |url= http://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24813.html |제목= 쿠바로 가는 길 열렸다 |저자= 정인환 기자 |웹사이트=한겨레21 |출판사=한겨레신문사 |날짜= 2009-04-24 | 확인날짜=2009-06-13|인용문=<!-- 해를 거듭할수록 봉쇄의 고삐는 옥죄어졌다. 급기야 지난 1992년엔 ‘쿠바민주화법’ 통과로 봉쇄정책의 입법화가 이뤄졌다. 1996년엔 극우 성향의 제시 헬름스 당시 상원 외교위원장(공화당) 주도로 ‘쿠바 자유화 및 민주화연대법’(헬름스-버튼법)이 통과돼 미국 자본의 쿠바 투자가 사실상 봉쇄됐다. 조지 부시 행정부 시절엔 쿠바 출신 이민·망명자들의 ‘본국 송금’조차 사실상 차단되기에 이르렀다.--> }}</ref> 미국의 대통령 [[버락 오바마|오바마]]는 2009년 4월 17일,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미국은 쿠바와 새로운 시작을 추구한다."고 표명하였고 47년 만에 쿠바에 대한 봉쇄정책을 일부 해제했다.<ref>{{웹 인용|url=http://www.america.gov/st/peacesec-english/2009/April/20090421102201dmslahrellek0.4116632.html?CP.rss=true|제목=Obama Says U.S., Cuba Taking Critical Steps Toward a New Day|출판사=america.gov|인용문=<!--Although Cuba was not on the summit agenda, nor were Cuban representatives invited to attend the gathering of 34 democratically elected hemispheric leaders in Port of Spain, the capital of Trinidad and Tobago, the country was nevertheless on everyone’s mind. Obama acknowledged as much in opening remarks April 17. “There’s been several remarks directed at the issue of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Cuba, so let me address this. The United States seeks a new beginning with Cuba,” he said.-->|확인날짜=2009년 9월 6일|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91130044737/http://www.america.gov/st/peacesec-english/2009/April/20090421102201dmslahrellek0.4116632.html?CP.rss=true|보존날짜=2009년 11월 30일|깨진링크=예}}</ref>
 
== 각국과의 대외 관계 ==
 
[[파일:President Barack Obama meets Prime Minister Gordon Brown.jpg|섬네일|오른쪽|영국 고든 브라운 총리와 오바마 대통령.]]
미국은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으로 전 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어서, 외교적 정책도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거의 모든 나라들이 [[워싱턴 DC]]에 [[대사관]]이 있으며 [[영사관]]들도 많다. 마찬가지로 거의 모든 나라들이 미국에 외교 기관을 두고 있다. 다만, [[쿠바]], [[이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부탄]], [[중화민국]] 등과는 공식적인 외교 관계가 없다.
 
=== 유럽 ===
 
==== {{국기|네덜란드}} ====
현재의 미국 영토에 네덜란드도 일찍이 진출하여 [[뉴네덜란드]](현재의 [[뉴욕]]과 [[뉴저지]])라 명명했었다.
 
==== {{국기|러시아}} ====
양국은 1809년에 수교하였다. 미국은 1868년에 북부 [[알래스카]]를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유상으로 구입했다. [[미국]]과 러시아는 [[소비에트 연방|소련]]시절부터 적대적인 관계였다. 하지만 두 나라 사이의 긴장이 높아져도 외교관계가 끊어지는 일은 없었고, 양쪽 모두 대사관을 두었다. [[1969년]] "[[아시아]] 각국은 내란이 발생하거나 침략을 받는 경우 스스로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였다. 1969년 1월 닉슨 행정부가 수립된 후 미소관계는 상호협조의 시대로 돌입했다. 선거기간 중 "자신이 당선되면 [[소련]]을 방문하겠다"고 강조한 닉슨 대통령은 취임연설에서 협상시대의 도래를 희망한 후 곧이어 서독, 영국, 이탈리아 등 서구 우방을 순방했다.(1969년 2월) 이 방문에서 닉슨 대통령은 대소협상에 관한 사전 의견교환을 하고 방소 준비를 착실히 진척시켰다.<ref>{{뉴스 인용 |url = 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2122900099204005&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72-12-29&officeId=00009&pageNo=4&printNo=2100&publishType=00020| 제목 = 이것이 미국이다<46> 외교 - 對蘇관계(하) | 날짜 = 1972-12-29 | 출판사 = 매일경제신문 |인용문=<!--1969년1월 「닉슨」行政府가 수립된 후 美蘇관계는 相互協調의 시대로 돌입했다. 선거기간 중 『자신이 당선되면 소련을 방문하겠다』고 강조한 「닉슨」대통령은 취임연설에서 協商時代의 到來를 희망한 후 곧이어 西独, 英, 伊 등 西歐友邦을 순방했다. (1969년 2월) 이 방문에서 「닉슨」대통령은 對蘇協商에 관한 事前意見交換을 하고 訪蘇준비를 착실히 진척시켰다-->}}</ref> 소련 해체 이후, 갈등을 겪기도 했으나 대체로 협력관계에 속해 있다. [[조지 W. 부시|부시]]시절엔 갈등이 심했으나, [[버락 오바마|오바마]]가 당선되면서 두나라 사이의 갈등이 조금씩 풀려가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가 [[크림 위기|크림 반도 침공]]함으로써 다시 양국관계는 냉각되었다.
 
==== {{국기|스웨덴}} ====
 
==== {{국기|온두라스}} ====
2009년 6월에 일어난 [[온두라스]]의 쿠데타 직후 이를 강력히 비난했던 미국의 태도가 서서히 바뀌어갔다. “좋지 않은 선례가 될 것”이라며 제재를 거론하더니, 2009년 10월 말 국무부 대표단이 온두라스를 방문한 이후 태도가 급변했다. “온두라스 국민은 스스로 대표자를 뽑을 권리가 있다. 셀라야 대통령이 복귀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선을 치르더라도, 그 결과를 인정하겠다.” 미 국무부는 그렇게 발표했다. “셀라야 대통령의 복귀 여부는 의회에서 판단하도록 하자”고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url=http://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26272.html |출판사=한겨레신문사 |뉴스=한겨레21|저자=정인환|날짜=2009-12-10|확인날짜=2010-02-13|인용문=<!-- 쿠데타 직후 이를 강력히 비난했던 미국의 태도는 서서히 바뀌어갔다. “좋지 않은 선례가 될 것”이라며 제재를 거론하더니, 지난 10월 말 국무부 대표단이 온두라스를 방문한 이후 태도가 급변했다. “온두라스 국민은 스스로 대표자를 뽑을 권리가 있다. 셀라야 대통령이 복귀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선을 치르더라도, 그 결과를 인정하겠다.” 미 국무부는 그렇게 발표했다. “셀라야 대통령의 복귀 여부는 의회에서 판단하도록 하자”고도 했다.--> }}</ref>
 
==== {{국기|쿠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