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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글로-개신교도 문화 ==
미국의 앵글로-[[개신교]]도 문화는 영국에서 비롯된 정치적 및 사회적 제도와 관행을 개척자들이 갖고 와 신대륙에서 새롭게 꽃을 피운 '''[[개신교|프로테스탄티즘]]<(protestantism>''')의 개념들과 가치관에 결합시킨 것이었다. 그래서 이 문화에는 영국의 전반적인 문화적 요소들과 개척자들이 속해 있던 영국 사회의 특정한 집단들에 독특한 요소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이 원래의 문화는 적응과 수정을 거치며 300년 동안 계속 되었다. 존 제이가 1789년에 근본적인 측면에서 언급한 [[미국의 정체성]] 요소들-언어, 종교, 정부의 원척, 예절과 관습, 전쟁 경험-은 20세기에도 여전히 미국의 문화를 규정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프로테스탄티즘은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19세기와 20세기 후반까지 이민자들은 앵글로-개신교도 문화의 중심적 요소들에 헌신하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강요, 유혹, 혹은 설득 당했다. 이민자들에게 미국화는 "엄청난 정신 적 억압의 과정이었다." 즉 1960년 대 이전에 이민자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전통을 버리고 기존의 문화적 기준에 완전히 동화 될 것을 요구 받았다. 역사적으로 미국에서는 백인 앵글로-색슨 개신교도가 아닌 사람들이 앵글로-개신교도 문화와 정치적 가치관을 수용함으로써 미국인이 되었고, '''미국의 신조''' 를신조를 탄생시킨 바로 그 문화의 중심에는 '''프로테스탄티즘(protestanism)=저항주의'''가, 즉, 저항주의가 있다.<ref name=autogenerated1>{{서적 인용 |제목 =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저자 = 새뮤얼 헌팅턴|출판사 = 김영사}}</ref>
 
== 기독교 국가로의 미국 ==
미국은 200년 이상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개신교도였다. 처음에는 독일과 아일랜드에서, 나중에는 이탈리아와 폴란드에서 상당수의 구교도 가톨릭 이민자들이 들어옴에 따라, 신교도들의 비율은 계속해서 떨어졌다. 2000년에 이르러 미국인들의 개신교도 비율은 60퍼센트쯤 되었다. 그러나 개신교도의 믿음체계와 가치관, 그리고 사고방식은 영어와 함께 미국의 개척자 문화에서 핵심적인 요소였다. 개신교도의 가치관은 미국의 문화에 중심적이기 때문에 미국에서 천주교와 그 밖의 종교들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그것은 사적 혹은 공적 도덕성, 경제적 활동, 정부 그리고 공공 정책에 대한 미국인들의 태도를 규정했다. 무엇보다 그것은 미국을 규정하는 핵심적 요소로서 '''앵글로-개신교도 문화''' 를문화를 보완하는, 외관상 세속적인 정치적 원칙들, 즉 '''미국의 신조''' 에 기본적인 원천이 된다.
 
17세기 초에 기독교는 "국가들을, 나아가 국가주의들을 규정하는 요인"이었고, 많은 나라들은 명시적으로 자신들을 개신교도나 구교도 국가로 규정했다. 유럽에서 기존의 사회들은 '''개신교도 개혁 (protestant Reformation''' )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했다. 미국에서 '''개신교도 개혁''' 은개혁은 새로운 사회를 만들었다. 독특한 국가로서 미국은 그와 같은 개혁의 산물이다. 20세기에 파키스탄 및 이스라엘이 이슬람교와 유대교 국가로서 탄생했듯이, 미국은 그들과 일부는 같은 이유에서 개신교도 국가로 탄생했다. 대부분의 19세기 역사에서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나라가 개신교도 국가라고 생각했고, 다른 나라들도 미국을 개신교도 국가라고 생각했으며, 교과서와 지도 같은 문헌에서도 미국은 개신교도 국가로서 소개 되었다. .<ref name=autogenerated2>{{서적 인용 |제목 = Made in USA|저자 = Guy Sorman|출판사 = 문학세계사}}</ref>
 
== 미국 개신교의 특성과 역사 ==
이와 같은 저항은 처음부터 뉴잉글랜드의 순례자들 pilgrims 및 [[청교도]]들 puritans 정착촌들에서 분명하게 나타났다. 청교도들의 교리까지는 아니어도 생각과 방식, 그리고 태도 등이 식민지들에 널리 퍼졌고 다른 신교도 집단들의 믿음과 생각에 영향을 끼쳤다. 때로는 정화되고, 때로는 수정되고, 때로는 희석되면서 [[청교도]]들의 전통은 미국의 핵심이 되었다.
 
처음에 [[청교도주의]] (puritanism)와 [[회중주의]] (congregationalism)에서 나타났던, 미국 [[프로테스탄티즘]]의 저항성은 그 후 수백 년 동안 [[침례교]], [[감리교]], [[경건주의]], [[근본주의]], [[복음주의]], [[성령주의]], 그리고 그 밖의 프로테스탄티즘에서 다시 나타났다. 18세기부터 미국의 프로테스탄티즘은 점점 더 대중적이고 덜 계층적이 되었으며, 점점 더 감정적이고 덜 지적인 것이 되었다. 교리보다 열정이 더 중요해졌다. 분파들과 운동들이 계속해서 늘어나며, 한 세대의 저항적 분파들이 다음 세대의 새로운 저항자들로부터 다시 도전을 받았다. '저항자들의 저항(''Dissidence of dissent'')은 미국 프로테스탄티즘의 특성과 역사 모두를 설명 한다.<ref name=autogenerated1 />
 
종교적 열정은 17세기와 18세기에 미국의 많은 분파들에서 뚜렷한 특징이었으며, [[복음 주의]] (evangelicalism )는 다양한 형태로 미국의 프로테스탄티즘에 중심이 되었다. 복음주의적 프로테스탄티즘은 19세기에 "미국인들의 삶에서 지배적인 요인"이었고, 늘 "미국 종교의 주류"를 형성했다. 19세기 초에 미국에서는 종파, 설교자, 그리고 신도들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종교적인 저항 내지 반항이 시대의 흐름이었다. 넘치는 힘의 젊은이들이 자의식적인 회부자로서 온갖 운동을 전개했다. 그들은 치열한 노력의 윤리, 확장에의 열정, 기존의 믿음과 방식에 대한 도전, 종교적 재건에의 헌식, 그리고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체계적 계획은 공유했다. 그들 모두 서민들에게,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개인적 자긍심과 집단적 자신감의 강력한 비전을 제시했다. 따라서 미국의 복음주의 역사는 단순한 종교적 운동의 역사를 넘어서며, 그것을 이해하면 19세기 미국인 삶의 전반적인 모습을 이해할 수 있다.<ref name=autogenerated1 />
 
== 미국인들에게 종교의 의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