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안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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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저와 정득후(鄭得厚)를 체포하려 하니, 득후가 김저와 같이 모의하고 밤에 태조의 저택(邸宅)으로 잠입하다가 문객(門客)에게 잡히게 되자,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김저를 순군옥(巡軍獄)에 가두니 공사(供辭)가 변안렬(邉安烈) 등에게 관련되었다. 대간(臺諫)이 청하므로, 태조(이성계)가 극력 구원하였으나 창왕은 듣지 아니하였다.(《태백산사고본》 1책 1권 26장 A면)" <ref>실록에 "창왕은 듣지 아니하였다." 라고 기록 되었으나 실제 변안렬의 순절 시기는 공양왕의 재임 기간중 이었다.</ref>
 
== 가족관계<ref><<황주변씨 족보>></ref> <ref><<원주변씨 족보>></ref> <ref><<대은 변안렬의 생애와 업적>></ref> ==
== 가족관계 ==
* 부: 변양(邉諒)
** 형(兄): 변안백, 고려 호부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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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자: 변영청(邉永淸) 사용공파祖
**** 손자: 변세청(邉世淸) 중랑장공파祖
<ref><<황주변씨 족보>></ref> <ref><<원주변씨 족보>></ref> <ref><<대은 변안렬의 생애와 업적>></ref>
 
== 조선왕조실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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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 링크 ==
{{외부 링크}}
* http://cafe.daum.net/gsb7302
* https://www.warmemo.or.kr/new/sub06/sub06_07.jsp?txtSearch=all&txtSearchText=&mode=view&noteid=35549&cpage=1
* https://www.youtube.com/watch?v=T6BAC_m14-E&feature=share&list=UUdySPt9FOzq8kKIkNhRacQ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