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제3공화국: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12번째 줄:
1940년 7월 10일, 독일의 [[프랑스 침공]]에 직면한 국회는 [[페텡]]에게의 권력 위임을 투표했다. 다음날 11일, 페텡은 그 스스로 '프랑스 국가원수' ([[비시 프랑스]])가 되었고, 실질적으로 제3공화국은 끝났다.
 
== 공화정과 왕정간의 초기 갈등 (1870-1879) ==
=== 1870년 보불전쟁 종결과 그 여파 ===
==== 국가 방위 정부 (Gouvernement de la Défense nationale) ====
28번째 줄:
1871년 1월 18일 독일 황제 [[빌헬름 1세]]는 최종적으로 [[베르사유궁]]에서 독일의 통일을 선언했다. 1월 23일부터 파리는 폭격과 위협과 기근의 고통을 겪었다. 외무부 장관 쥘 파브르는 독일과의 협상을 하기 위해 정부인사들과 함께 수도에 머물렀다. 휴전 협정은 포위된 지 132일이 지난 1월 28일이 되서야 체결되었다.
 
=== 제3공화국의 탄생 ===
프랑스는 [[1870년]]에 일어난 [[보불전쟁]]에서 패배해 당시 [[프랑스 제2제정|제2제정]] 황제 [[나폴레옹 3세]]를 내쫓고 1871년 [[아돌프 티에르]]를 대통령으로 하는 제3공화국을 수립했다.
 
같은 해에 일어난 [[코뮌]]주의자들의 자치적 [[사회주의]] 정권([[파리 코뮌]])을 진압하고 해군의 함정정비에 대한 계획을 세워 해군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 제3공화국의 벨 에포크 '''(1879-1914)''' ==
== 제1차 세계대전 ==
 
== 제1차 세계대전부터 제3공화국의 붕괴까지 (1914-1940) ==
제3공화정 8대 대통령인 [[레몽 푸앵카레]] 대통령이 재임 중이었던 [[1914년]] 8월, [[독일 제국]]이 프랑스에게 선전 포고를 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 독일제국은 전쟁초기에 단숨에 프랑스를 정복할거라 확신했었지만, 프랑스는 과거 보불전쟁(1870년~1871년)에서의 굴욕적 패배에 대한 복수심이 강하게 불타올랐기에 저항이 강했다.
 
따라서 [[1차 마른 전투|마른 전투]]에서 독일군을 무찌르면서 전쟁의 양상은 참호전 형식으로 장기전이 되어 프랑스군과 영국군은 1917년까지 독일군과 대치 상황을 두고 지겹게 싸웠고 어느 한 쪽으로 밀리지 않는 양상이 되었다. [[1917년]] [[미국]]이 참전하면서 독일군을 격파하였다. [[1919년]] [[베르사유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제1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끝낸다.
 
=== 1920년대 : 어려운 전후관리 (1919–1929) ===
== 제2차 세계대전과 제3공화국의 붕괴 ==
 
=== 위기와 붕괴 (1929-1940) ===
제1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는 패전국인 독일에 대해 베르사유 조약을 통하여 가혹하게 다뤘는데, 이는 프랑스가 전쟁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이 베르사유 조약의 가혹함은 뒷날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는 불씨가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