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바티칸 공의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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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제가 신자들과 함께 제단을 바라보며 미사를 올린 것을 신자들을 마주보며 미사를 올리게 됨. 그러나 명시적으로 제단을 바라보는 자세가 금지된 것은 아니다.
* 소녀 [[복사 (기독교)|복사]]가 최초로 인정되었다.
* [[1517년]] 종교개혁 전통에 따라 분열된 [[개신교]]를 폄하하는 표현이었던 [[열교]]를 ‘분리된 형제’로 순화했다.<ref>1960년대 루터교회와 다른 개신교회가 발표한 로마가톨릭의 종교개혁 개신교 신자 살해와 방화 및 억압에 대한 용서에 대한 응답이었다.</ref> 다만 여전히 독립적 지위는 인정하지 않았다.
* [[1054년]]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교회 분열로 갈라진 동방교회([[동방정교회]])와 화해하였다.<ref>1960년 동방정교회가 발표한 로마가톨릭교회의 십자군 전쟁 시기에 저지른 정교회 교인 살해와 교회 약탈, 방화와 그외 정교회에 대한 약탈에 대한 용서에 대한 응답이었다. </ref>
* 다른 종교에도 배울 점이 있으나, [[기독교]]적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종교관을 고백했다. 이와 관련해 전세계 다른 종교인들이 상당히 고무되었다.
* [[교회]]의 사회적 책임에 곧 사회적 불의에 하느님의 말씀으로 저항하는 [[예언자]]적인 책임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저명한 [[로마 가톨릭교회]] 신학자이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신학 자문으로도 활약한 [[칼 라너]] 사제가 제2차 세계대전당시 가톨릭이 교회의 안위를 위해서라는 이유로 [[나치독일]] 등의 [[전체주의]]에 저항하지 않은 점<ref>이는 가톨릭에서 요한바오로 2세 때에 사과한 가톨릭교회의 잘못들중 하나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가톨릭 사제 [[아베 피에르]]는 제2차 세계대전때에 유대인들을 도왔다. 하지만 교황청은 이면이나 측면에서 유대인 피난민들을 부분적으로 돕기도 하였다.</ref> 에 대해 지적한 일이 영향을 준 것이다.<ref>{{저널 인용|저널=목회와 신학|연도=2005|월=2|제목=한국교회의 갱신을 위한 권두대담|저자=[[호남신학대학교]] 황승룡 교수와 [[장로회신학대학교]] 김명용 교수|쪽=45쪽}}</ref><ref>현대사회문제들에 대한 [[기독교]]적인 해석인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헌장》에서 [[평화주의]] 신념에 따라 [[폭력]]에 반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할 것을 주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