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시데리우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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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자 = [[아이스툴푸스]]
|후임자 = [[카롤루스 1세 마그누스]]
|공동재위자 = [[아델키스]]
 
|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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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브레시아]] 출신으로, 데시데리우스는 원래 "랑고바르드인의 공작 겸 무관장({{llang|la|dux Langobardorum et comes stabuli}})"으로, 동시대 프랑크인의 [[프랑크인의 공작]], [[궁재]]와 비슷한 위치였다. [[아이스툴푸스]] 왕이 데시데리우스를 [[이스트라반도|이스트라]]와 [[토스카나]]의 공작으로 임명했고, 756년 아이스툴푸스가 죽자 데시데리우스가 왕이 되었다. 아이스툴푸스의 전임 왕이었던 [[라트키스]]가 왕위를 되찾으려고 [[몬테카시노]]에서 반란했으나 데시데리우스는 [[교황 스테파노 2세]]의 지지를 등에 업고 금방 반란을 진압했다. 데시데리우스는 교황이 자신의 왕위를 지지해주는 대가로 교황청이 그간 잃었던 읍락들을 반환하겠다고 대관식에서 약속했다.
 
그 전의 랑고바르드인 왕들이 그랬듯이 데시데리우스도 [[이탈리아 반도]] 전체에 랑고바르드인의 권역을 넓히려 했고 그 과정에서 교황청 및 남부의 공국들과 충돌했다. 759sus 데시데리우스가 아들 [[아델키스]]를 공동왕으로 올린 그 해 [[베네벤토 공국]], [[스폴레토 공국]]이 [[교황 스테파노 3세]]와 짜고 랑고바르드 왕국에서 이탈하여 프랑크의 왕 [[피피누스 3세 브레비스]]에게 가담했다. 데시데리우스는 베네벤토의 반란을 쳐부쉈다.<ref name="Ulwencreutz2013">{{cite book|author=Lars Ulwencreutz|title=Ulwencreutz's The Royal Families in Europe V|url=https://books.google.com/books?id=fpQlBgAAQBAJ&pg=PA350|date=November 2013|publisher=Lulu.com|isbn=978-1-304-58135-8|page=350|이탤릭체=예}}</ref> 767년 [[교황 바오로 1세]]가 죽었을 때 데시데리우스는 [[성 비투스 수도원]]에서 필리프라는 사제를 데려다 768년 7월 31일 교황으로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이 [[대립교황 필리프]]는 아무의 지지를 받지 못했고, 수도원으로 낙향한 뒤 행적을 알 수 없다.<ref>{{cite book|last=Reardon|first=Wendy J|title=The Deaths of the Popes. Comprehensive Accounts Including Funerals, Burial Places and Epitaphs.|publisher=McFarland|pages=59|이탤릭체=예}}</ref>
 
768년, 데시데리우스의 딸 [[데시데라타]]와 피피누스 3세의 아들 카롤루스 1세 사이에 혼담이 오갔다. 하지만 스테파노 3세는 이 결혼을 반대했고 데시데리우스는 스테파노 2세와 맺었던 영토 반환 약속을 파기했다. 770년 데시데라타는 카롤루스와 결혼했으나 결국 1년만에 소박을 맞았다. 같은 해, 카롤루스의 동생 [[카를로마누스 1세|카를로마누스]]가 죽고 그 미망인 [[게르베르가]]가 데시데리우스에게 의탁해 왔다. 데시데리우스는 아마 데시데라타의 이혼에 대한 보복으로 게르베르가의 아들들이 프랑크인의 왕위의 정당한 계승자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카롤루스와 짜고 랑고바르드를 대적하려 하던 [[교황 아드리아노 1세]]를 공격하고 [[펜타폴리스]]를 침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