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김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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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헌 (토론 | 기여)
궁예는 후백제가 아님. 군으로 봉하는 제도도 고려 말에 시행. 족보 조작 거짓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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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시조 '''김총'''(金摠)은 825년(신라 헌덕왕 17)에 태어나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을 도와 관직이 인가별감(引駕別監)에 이르렀다고 한다.
《김씨 분관록》 및 《증보문헌비고》등에 시조 '''김총'''(金摠)은 신라 종성(宗姓. 대보공 김알지의 후예)으로 [[후백제]] [[궁예]](弓裔) 때 인가별감(引駕別監)을 지내고 평양군(平陽君)에 봉해졌으며, 사후(死後) 향인(鄕人)들이 순천부(順天府) 성황신(城隍神)으로 추앙하였다고 한다. 평양(平陽)은 [[순천시|순천]](順天)의 고호(古號)이어서 후손(後孫)들이 [[순천시|순천]](順天)을 본관(本貫)으로 하였다.
 
[[조선 단종]] 때 [[계유정난]](癸酉靖難)으로 [[김종서]](金宗瑞)가 화를 입어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하여 선대의 문헌이 거의 소실되면서 고려 말 전라도 순천부(順天府) 여수(麗水) 출신으로 조선조에 여산군(麗山君)에 봉해졌다가 평양부원군(平陽府院君)으로 개봉된 [[김승주]](金承霔)의 증조부인 '''김윤인'''(金允仁)을 1세조로 하는 계통과, [[김종서 (1383년)|김종서]](金宗瑞)의 조부인 '''김태영'''(金台泳)을 1세조로 하는 계통 두 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