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에몽 2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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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BohemondII.jpg|right|300px|섬네일|보에몽 2세의 동전.]]
'''보에몽 2세''' ([[1108년]] – [[1131년]]) 은 [[1111년]] 부터 [[타란토 후국|타란토의 후작]]이자 [[안티오키아 공국후국|안티오키아의 공작]]이다. 보에몽 2세는 [[타란토 후국]]과 [[안티오키아 공국후국]]을 세운 [[타란토의 보에몽|보에몽 1세]]와 [[필리프 1세]]의 딸인 콩스탄체 와의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다.
 
[[1111년]] 아버지 보에몽 1세가 이탈리아에서 죽었을 때 보에몽은 [[아풀리아]]에서 머물고 있었고 너무 어린 나이여서 안티오키아 공국은후국은 친척인 [[탕크레드 (십자군)|탄크레드]]가 섭정을 맡았다. 탕크레드는 [[1112년]] 죽었고 섭정은 다시 [[살레르노의 루지에로]]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1119년]] 루지에로도 이슬람과의 전투에서 죽었고 [[예루살렘의 보두엥 2세]]가 섭정이 되었다.
 
보에몽은 [[1126년]], 18살이 되는 그 날로 이탈리아를 떠나 [[안티오키아]]로 향했다 [[1127년]] 부터 보에몽은 맹렬히 공국 주변을 공격하고 영토를 강화하는 데 힘 썼다. 특히 [[에데사 백국]]과 영토를 놓고 경쟁했는데 이는 섭정이었던 루지에로가 공국의 영토를 멋대로 에데사 백국에 넘긴 것이 발단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