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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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이전에는 계형(의형)인 하진과 함께 남양(南陽)에서 도살업을 하고 있었다고 여겨지나, 이복동생이 영제의 총애를 받고, 황자(皇子)인 [[후한 소제 (13대)|유변(劉辯)]]을 낳아 황후가 되자, 계형과 함께 관료가 되어, [[하남윤]]에 임명되었다. 그 후, [[거기장군]]으로 누진해 제양후로 봉해졌다.
 
189년, [[후한 영제|영제]]가 붕어해 [[후한 소제 (13대)|소제]]가 즉위하자, 환관의 존폐를 둘러싸고, 정치 싸움이 발생했다. 당시 계형인 하진 등은 환관의 제거를 요구해 동생인 황태후에게 그 뜻을 주상했으나, 하묘는 이복동생인 황태후와 결탁해서 계형과 대립해, 한왕조의 전통이라고 주장하며 환관을 옹호했다.
이전에는 계형(의형)인 하진과 함께 남양(南陽)에서 도살업을 하고 있었다고 여겨지나,
이복동생이 영제의 총애를 받고, 황자(皇子)인 [[후한 소제 (13대)|유변(劉辯)]]을 낳아 황후가 되자,
계형과 함께 관료가 되어, 하남윤(河南尹)에 임명되었다.
그 후, [[거기장군]]으로 누진해 제양후로 봉해졌다.
 
하묘는 어머니 [[무양군]]과 함께 십상시가 바치는 뇌물을 받았는데, 이 때문에 하진이 십상시를 제거하려 하자 누이 하태후에게 간언하여 이를 막게 하였다. 또 하진에게도 십상시를 해치지 말 것을 권하였다.
189년, [[후한 영제|영제(靈帝)]]가 붕어해 소제(少帝)가 즉위하자, 환관의 존폐를 둘러싸고, 정치 싸움이 발생했다.
 
189년 8월 하진이 십상시에게 암살당하자, [[원소 (후한)|원소]]와 함께 십상시를 공격하여 그 중 하나인 [[조충 (후한)|조충(趙忠)]]을 죽였다. 그러나 하진의 사병을 거느리던 장수 [[오광 (후한)|오광]]은 평소 십상시를 옹호하던 하묘를 곱게 보지 않았는데, 하진이 죽자 하묘가 하진 암살에 가담한 것으로 여기고 동탁의 동생 동민(董旻)과 함께 하묘를 죽였다.
당시 계형인 하진 등은 환관의 제거를 요구해 동생인 황태후에게 그 뜻을 주상했으나,
하묘는 이복동생인 황태후와 결탁해서 계형과 대립해,
한왕조의 전통이라고 주장하며 환관을 옹호했다.
 
하묘의 무덤은 상경한 [[동탁|동탁(董卓)]]에 의해 파헤처져 시체가 절단당한 후 길에 버려지는 수모를 겪었다.
하묘는 어머니 무양군(舞陽君: 작위 이름)과 함께 십상시가 바치는 뇌물을 받았는데,
이 때문에 하진이 십상시를 제거하려 하자 누이 하태후에게 간언하여 이를 막게 하였다.
또 하진에게도 십상시를 해치지 말 것을 권하였다.
 
189년 8월 하진이 십상시에게 암살당하자, [[원소 (후한)|원소(袁紹)]]와 함께 십상시를 공격하여
그 중 하나인 [[조충 (후한)|조충(趙忠)]]을 죽였다.
그러나 하진의 사병을 거느리던 장수 [[오광 (후한)|오광(吳匡)]]은 평소 십상시를 옹호하던 하묘를 곱게 보지 않았는데,
하진이 죽자 하묘가 하진 암살에 가담한 것으로 여기고 동탁의 동생 동민(董旻)과 함께
하묘를 죽였다.
 
하묘의 무덤은 상경한 [[동탁|동탁(董卓)]]에 의해 파헤처져 시체가 절단당한 후 길에 버려지는 수모를 겪었다.
 
==각주==
{{각주}}
<references/>
 
{{전임후임
|직책=[[후한]]의 [[하남윤]]
|임기=([[187년]]? 당시)~ 187년
|전임자=[[서관 (후한)|서관이섭]]
|후임자=[[왕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