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광복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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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범석]] (李範奭, 1900년 10월 20일 ~ 1972년 5월 11일) : 1919년 3.1운동 직후 만주에서 [[신흥무관학교]]와 [[북로군정서]] 등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했으며, 1920년 [[김좌진]], [[홍범도]] 등과 함께 [[청산리 전투]]를 이끌어 대승을 거두었다. 1933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합류하였고, 194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의 한국광복군을 창설하고 육군소장에 임명되었다. 1945년 8월 18일 일본 패망 소식을 듣고 미군 비행기로 김포공항에 입국했으나 일본군에서 저지당하여 다시 상하이로 되돌아갔다. 1946년 귀국하여 미군정의 지원을 받아 [[조선민족청년단]](약칭 족청)을 창설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국회에서 초대 국무총리로 선출되었으며 초대 국방부 장관을 겸직하였다.
* [[안춘생]] (安椿生, 1912년 8월 12일 ~ 2011년 1월 26일) : [[안중근]] 의사의 5촌 조카로서, 한국 광복군 제2지대 제1구대장으로 활동했다. 해방 후 대한민국 육군 중장을 지냈고, 국회의원 및 제1, 2대 [[독립기념관]] 관장을 지냈다.
* [[박정희]] (朴正熙, 1917년 11월 14일 ~ 1979년 10월 26일) : 일본군 장교로 근무하다가 1945년 일본이 패망하자 9월 21일 동료들과 함께 베이징 쪽으로 건너가 한국광복군에 편입되었다. 박정희는 한국광복군 제3지대 제1대대 제2중대장으로 활동하다가 1946년 5월 8일 미군 수송선을 타고 귀국했다. 대한민국 국군 장교로 활동하다가 1961년 5월 16일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고, 제 5~9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었다.
* [[장준하]] (張俊河, 1918년 8월 27일 ~ 1975년 8월 17일) : 1944년 1월 일본군에 자원 입대하였으나 7월에 탈출한 후 중국군 준위로 활동했다. 이듬 해인 1945년 2월 중국 [[충칭]]에 있는 한국광복군을 찾아가 소위로 복무하였다. 이후 미국 [[CIA]]의 전신인 전략첩보대(OSS)에서 활동하면서 3개월간 국내 진공작전에 가담하여 국내 밀파 특수공작원으로 대기 하던 중 1945년 해방을 맞아 임정 제1진으로 귀국하였다. 이후 [[김구]]의 비서로 일했고, 《[[사상계]]》를 창간하였다. 1975년 [[박정희]] 정권에 대항하는 거사를 준비하던 중 의문사를 당했다.
* [[김준엽]] (金俊燁, 1920년 8월 26일 ~ 2011년 6월 7일) : 일제 강점기에 학도병으로 강제 징집되었으나 탈출하여 한국광복군을 찾아가 중국에서 광복군으로 활동했다. 1945년 해방 후 [[고려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1982년 고려대 총장이 되었으나,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에 맞서다가 1985년 강제로 사임을 당했다. 1987년 6.10 민주화 운동 이후 새로 개정된 헌법 전문에 대한민국 정부가 임시정부를 계승하였다는 문장을 삽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