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규 (법조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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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과의 관계==
[[이명박]] 대통령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그는 이명박이 지난 [[1999년]] 조지워싱턴대학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일하던 시절 검찰 파견직으로 워싱턴 영사관에서 일하며 당시 [[한국일보]] 워싱턴 특파원이었던 [[신재민]]의 소개로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ref>[{{웹 인용 |url=http://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906016173d&ltype=1&nid=000&sid=0001&page=1 |제목=한국경제 - 이인규 중수부장, 이젠 정치권의 표적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1999년부터 각별한 인연, 국정원장은 임 검찰총장 무시하고 이 중수부장에게 메시지 전달] |확인날짜=2009-06-09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60304103457/http://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906016173d&ltype=1&nid=000&sid=0001&page=1 |보존날짜=2016-03-04 |깨진링크=예 }}</ref> [[신재민]]은 [[조선일보]]를 거쳐,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으로 임명되고, 이인규는 검찰 요직인 중수부장에 임명되어 모두 정권의 실세로 등장한다. 이러한 배경으로 이번 수사에서 임채진 검찰총장은 배제되고 이 부장이 청와대와 직접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인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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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규는 검찰 특수부의 주요 보직을 거치지 못했다. 그러나, 2009년 1월 대검 중수부장이 되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뇌물 수수 혐의에 대한 수사를 지휘했다. <ref>[http://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59988.html 지연·학연 얽힌 ‘패거리 조직문화’ 수술해야]</ref>
 
이 수사의 발단은 2008년 7월 [[국세청]] [[한상률]] 전 청장이 관할이 아닌 조사4국을 시켜 노 전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인 [[박연차]] 회장의 [[태광실업]]을 세무조사한 후 [[박연차]]씨와 노 전 대통령 가족 간의 돈거래 내용을 [[이상득]] 의원에게 보고하며 시작되었다는 의혹이 있다.<ref name="법무장관중수부">[http://zine.media.daum.net/sisain/view.html?cateid=3000&newsid=20090611095132314&p=sisain 법무부 장관과 대검 중수부장 언제까지 버티려나]{{깨진 링크|url=http://zine.media.daum.net/sisain/view.html?cateid=3000&newsid=20090611095132314&p=sisain }}</ref> 2008년 12월 검찰에 구속될 때 원래 입이 무겁기로 유명한 [[박연차]]는 지금까지 정관계 인사에게 현금이나 상품권만 주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내가 안고 가겠다"며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검찰은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중인 외아들의 병역기록을 검토하고 태광실업 경영을 맡고 있던 장녀를 비롯한 세 딸과 사위를 출국금지하고 소환했으며 상속세를 탈세했는지 검토를 시작하자 결국 박연차 회장은 수사협조를 약속했다. 그러자 딸과 사위에 대한 출국금지가 풀렸으며 외아들의 병역문제도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냈다.<ref>[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90512004005 또 장남 압박 카드 千회장 입도 열까]</ref> 이 때 검찰은 박연차와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와의 거래는 퇴임 후 사적거래라 판단하였다.
 
그러나, 몇 개월 후 검찰 인사 이후 검찰 수사팀은 다시 꾸려졌고, 이인규, 홍만표 등이 합류하였다. 이인규는 공공연히 이전 검찰의 수사기록을 재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주변 인물 및 일가족의 줄소환이 시작되었다. 한 사람씩 차례 차례 소환이 이루어지다 2009년 4월 12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가 중수부의 조사를 받았다. 이어서, 4월 3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에 출두했다. 한편 이 당시 검찰청자에 도착한 전직 대통령을 건물 위에서 내려다보며 웃음짓는 몇몇 검사가 카메라에 찍혀서 유명해졌다. 이 때 참여정부의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을 지낸 [[문재인]] 변호사가 동행했는데, 문재인은 자서전에서 조사실에서 이인규 중수부장이 노무현 대통령 소환조사시 대단히 건방졌으며, 말투는 공손했지만 태도엔 오만함과 거만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고 회고했다. <ref>성한용, [http://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82723.html “문성근씨 2003년 대통령 친서 가지고 방북쇠고기협상 FTA뒤로 연기, 이대통령도 공감”], 한겨레신문</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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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고, 이인규는 6월 12일 6개월에 걸친 '박연차 리스트' 수사 결과를 5분만의 발표로 종결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혐의는 '뇌물수수'로 밝혔다. 하지만 구체적 증거를 내놓지는 않고 '역사적 진실'은 수사기록에 남겨 보존하겠다고 하였고, 수사 과정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최선을 다했다며 수사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이에 [[문재인]] 변호사는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을 두 번 욕보이는 행태에 분노를 느낀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변호인단은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과 함께 이번 수사결과 발표는 책임 회피와 자기 변명으로 일관됐다고 비판했다
<ref>[http://news.kbs.co.kr/article/society/200906/20090612/1792793.html [취재현장]{{깨진 링크|url=http://news.kbs.co.kr/article/society/200906/20090612/1792793.html }} 박연차 수사 종결]</ref>
 
2011년 6월 23일 민주당 김동철 의원이 공개한 '사건위임계약서'에 따르면 법무법인 '바른' 소속인 정동기 전 민정수석과 이인규는 2011년 4월 부산저축은행의 변호를 맡는 조건으로 착수금 3억원을 받는 계약을 체결했다. 두 사람의 의뢰인은 부산저축은행그룹 박연호 회장, 김민영 부회장, 김양 부회장, 강성우 감사 등 4명이었다. 정동기와 이인규는 최고 9억원대의 성공보수도 약속받았던 것으로 나타나 전관예우 논란이 나오고 있다. 법무법인 바른은 부산저축은행 사건이 터진 뒤 피해자들이 "부도덕한 사람을 변호하는 것이 잘하는 일이냐"고 항의하자 뒤늦게 변호계약을 취소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