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국 (제2차 세계 대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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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르투갈의 상황 ===
포르투갈과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동맹([[앵글로-포르투갈 동맹]]으로써 1373년부터 유지)로써 포르투갈은 공식적으로 중립 입장에 있었으나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의 파시스트 정권이 집권하고 있었다. 그러나, 세계 대전에서 영미를 지원하여 [[라지스 (히우그란지두노르치)|라지스]], [[테스세이라 섬]], [[아소르스 제도]]의 연합군 점령을 묵인했다. 1940년, 루즈벨트와 처칠은 모두 아소르스의 예방 점령 가능성에 직면했다.<ref>Kenneth G. Weiss, [http://www.cna.org/documents/5500027200.pdf The Azores in Diplomacy and Strategy, 1940–1945, Center for Naval Analyses, 1980, Alexandria, VA] {{웨이백|url=http://www.cna.org/documents/5500027200.pdf |date=20110927091705 }}</ref> 포르투갈은 또한 1942년 연합군의 [[포르투갈령 티모르]] 점령에 항의하지만,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다. 식민지는 이후 일본에 의해 점령되었다. 티모르와 포르투갈인과 호주 [[오스트레일리아 특공대|특공대]]는 [[티모르 전투 (1942-43)|티모르 전투]]로 저항한다.
 
=== 유고슬라비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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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아메리카 연합 ===
[[범아메리카 연합]]의 회원들은, 모두 1939년부터 1941년 사이 중립이었고 1940년 7월 21일-30일에 [[아바나]]에서 외교장관들이 서명했다. "아메리카 국가의 방위를 위한 상호 지원 및 협력에 관한 선언"은 쿠바의 아바나에서 1940년 7월 30일에 미국의 외무부 장관의 제2차 회의의 최종 법안 중 일부였다.<ref>[{{웹 인용 |url=http://www.ibiblio.org/pha/7-2-188/188-26.html; |제목=http://www.yale.edu/lawweb/avalon/decade/decad058.htm ] |확인날짜=2012-03-31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0204144902/http://www.ibiblio.org/pha/7-2-188/188-26.html |보존날짜=2012-02-04 |깨진링크=예 }}</ref> 다음 21개국이 있었다:
 
* {{국기나라|아르헨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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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나라|쿠바}}: 1941년 12월 9일
*{{국기그림|필리핀|1919}} [[필리핀|필리핀 연방]]: 1941년 12월 9일 <ref name="Britannica 1" /><ref name="UN Declaration 2" /><ref name="UN Charter" >{{웹 인용|url=http://www.un.org/en/members/growth.shtml |제목=United Nations member States – Growth in United Nations membership, 1945–present |publisher=Un.org |date= |accessdate=2010-05-15}}</ref><ref>필리핀 외교 및 군사 업무는 미국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망명정부는 1942년 6월 10일 서명했다.</ref>
*{{국기나라|대한민국 임시정부}}: 1941년 12월 10일 <ref>[http://korean.cqnews.net/html/2012-06/08/content_16419455.htm 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 중국측 페이지 중 대일선전포고에 관한 내용 발췌] {{웨이백|url=http://korean.cqnews.net/html/2012-06/08/content_16419455.htm |date=20130731071306 }} -"한국광복군은 창설 이후 1942년 ‘조선의용대’까지 편입하여 4개 지대와 특파단 공작대 등을 편성함으로써 조직적인 군사력을 갖게 되었다. 이 같은 한국광복군의 무장력을 바탕으로 임시정부는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대일선전성명서’를 발표하고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할 것을 천명하였다. 그리고 중국군은 물론 영국군과 미군과도 연합작전을 수행하여 인도와 미얀마 전선에까지 공작대를 파견하여 전투를 별였고 정보수집, 선전활동 등에 주력해 활동하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1944년에는 미군전략정보처와 군사합작을 합의하여 광복군 선발 대원들이 특수훈련을 받아 국내에 진공할 만반의 준비를 다 하였다."</ref><ref>[http://mpva.tistory.com/1518 보훈처 대일선전포고 70주년 기념식 내용 발췌 부분] "2011년 12월 10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일선전포고 7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대일선전포고는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닙니다. 1941년 12월 10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일선전포고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존재를 세계에 알리고, 우리 민족의 자주 독립을 향한 기개와 저력을 세계 만방에 천명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항일 투쟁의 구심점이었던 임시정부가 진주만을 습격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에 대해 응징을 선언함으로써 연합국의 일원으로서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하루 앞선 12월 9일 오늘 오전 11시, 백범기념관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일선전포고 70주년 기념식이 진행되었는데요.박유철 광복회장, 최완근 서울지방보훈청장을 비롯하여 독립운동 관련 단체장과 광복회원 등 300여 명이 기념식에 참석하셨습니다. 70주년 기념식은 한국독립유공자협회장의 식사와 한국광복군동지회장의 대일선전포고문 낭독에 이어 서울지방보훈청장, 광복회장의 축사, 3.1여성동지회의 독립군가 합창, 원로 애국지사의 만세삼창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중략)...</ref>
*{{국기그림|체코슬로바키아}} [[체코슬로바키아 망명 정부]]: 1941년 12월 16일 <ref>[[체코슬로바키아 망명정부]]는, 1939년 3월 체코슬로바키아 해체 이후 결성되었다. 망명중인 체코는 전쟁 초기부터 연합군과 같이 전쟁하였다.</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