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음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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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조]]의 [[숭유억불정책]]의 영향으로 차를 가장 많이 사용하고 보급하던 승려층이 권력계급에서 사라지게 되면서 차문화의 주도권은 양반가와 정부로 넘어가게 된다. 다방제도는 유지되었으며 차례를 관할하게 되었고 궁내에는 다시가 있어 모두 모여서 차를 마시는 시간이 있었으나 검약을 추구했던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사치품이었던 차는 일상적인 음다 문화의 중심에 나타나지 않게 되고 다과상에는 여러가지 [[대용차]]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조선]] 후기인 약 16세기경에 들어 선비들과 승려들간에 문인으로서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차문화는 다시 시류의 중앙으로 돌아오게 된다. 다성으로 불리는 [[초의선사]] 의선의 [[동다송]]과 같은 역작도 나타나는 것도 이 시점으로 [[정약용]]과 [[김정희]]등의 문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ref>"아름다운 우리차", 윤숙자, 유복렬, 김미전 저, 질시루, 2007</ref>
 
지리산 일대를 따라 조성되었던 녹차 산지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이 일대의 지주였던 양반가가 몰락하고 당장 먹을 것이 귀해지면서 차나무를 방치하게 되는 한편, 일본인들이 보성과 광주 일대의 땅을 매입하여 녹차농장을 한국에 조성하려 했기 때문이다.해방 후 국가에서 해당 토지를 환수하여 일제 강점기 이전에 소유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돌려주게 됨에 따라 원래 지주의 손에 돌아가게 된다. 전란 후에는 주로 차를 만들던 사찰을 중심으로 해당 지역 농민들에게 차를 만드는 법을 가르치거나 차밭을 일구는 형태로 해당 지역 기간산업을 일으키는 일이 많아져서 이후 새로운 다원들의 토대가 된다.<ref>[{{웹 인용 |url=http://utour.gwangju.go.kr/utour/culture.do?S=S01&M=020200000000&b_code=CULTURE_KOR&tour_cg=TOUR002&act=view&list_no=28 |제목=허백련과 춘설헌" 광주 문화관광포털] |확인날짜=2011-06-19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60130191823/http://utour.gwangju.go.kr/utour/culture.do?S=S01&M=020200000000&b_code=CULTURE_KOR&tour_cg=TOUR002&act=view&list_no=28 |보존날짜=2016-01-30 |깨진링크=예 }}</ref>
 
따라서 한국의 녹차밭은 운남 소엽종이 토착화한 재래종과 [[일본]] [[시즈오카]]에서 유래한 대엽종인 [[야부기다]]종이 재배가 시작된 시점에 따라 서로 다른 지역에서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보성]], [[광주]] 일대와 [[서귀포]] 부근에 있는 조성된 차밭은 야부기다종이, 지리산 남쪽을 따라서 [[경남]] 일대 산야에는 재래종이 자생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으나 일정하지는 않다. 최근에 대단위로 조성이 된 제주 녹차의 경우 [[후슌]]과 [[야부기다]]종이 주로 심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ref>[{{웹 인용 |url=http://www.jejufocus.com/news/articleView.html?idxno=22405 |제목=제주포커스, "국제식물신품종보호협약(UPOV) 전면 시행이 제주 차산업에 미치는 영향과 대책"] |확인날짜=2011-06-19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11130135614/http://www.jejufocus.com/news/articleView.html?idxno=22405 |보존날짜=2011-11-30 |깨진링크=예 }}</ref>
 
차나무 잎을 이용해서 만든 차와 [[한방]]에서 유래한 [[한방차]] 혹은 [[대용차]]로 불리는 차가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차는 차나무 잎을 이용해서 만든 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