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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이 죽자 그의 맏아들 [[연남생]]이 대막리지 직위를 이어받았지만, 동생인 [[연남건]]과 [[연남산]]은 형의 권력 독식에 불만을 품었다. 그래서 연남생이 변방을 순행하는 사이 왕명을 빙자하여 연남생의 측근을 없애고 연남생을 소환하려 하였다. 이에 연남생은 당나라로 탈출하여 투항하였다.<ref name="사기-666">《삼국사기》 권제22 고구려본기 제10 보장왕 25년(666)</ref>
 
[[666년]] 8월 보장왕은 연남건을 대막리지로 삼고 조정을 재편하였다. 하지만 조정은 이미 많은 신하가 제거되어 어수선하였고, 민심도 연남건 형제에게서 등을 돌렸다. 당 고종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12월 연남생을 앞장세워 [[이세적|이적]], [[설필하력글필하력]], [[학처준]], [[백안륙]] 등에게 군사를 내주어 고구려를 재침략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되자 연개소문의 동생 [[연정토]]는 한반도 쪽의 12개 성을 가지고 신라에 투항해 버렸다.<ref name="신라-666">《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6년(666)</ref>
 
[[667년]]부터 당나라군의 대대적인 공격을 받아 여러 성과 마을이 함락되었고,<ref name="사기-667">《삼국사기》 권제22 고구려본기 제10 보장왕 26년(667)</ref> [[668년]] 9월에는 보장왕이 머무르던 평양성이 함락되고 말았다. 이에 따라 보장왕은 항복을 선언하고 당나라로 끌려갔다. 보장왕이 항복했음에도 남아있던 고구려 병사들은 여전히 당나라에 맞서 싸웠지만, 결국 고구려는 멸망하고 말았다.<ref name="사기-668">《삼국사기》 권제22 고구려본기 제10 보장왕 27년(668)</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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