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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크기 =
|설명 = 제주43평화공원 [[다랑쉬굴]] 학살 현장 재현
|날짜 = [[1948년]] [[4월 3일]] ~ [[1954년]] [[9월 21일]]
|장소 = [[제주도]] 전역
|결과 = 공산 유격대 토벌, 극심한 민간인 피해 발생.
|군대1 = {{국기그림|미국|1912}} [[미군]]<br />[[남조선국방경비대|국방경비대]]<br />[[제주지방경찰청|제주경찰]]<br />[[서북청년단]]
|군대2 = [[남조선로동당]]
|군대3 = ­
|지휘관1 = [[송요찬]]<br />[[유재흥]]<br />[[김익렬]]<br />[[조병옥]]<br />[[박진경]]{{처형}}
|지휘관2 = [[김달삼]]{{KIA}}<br />[[이덕구]]{{KIA}}
|지휘관3 = ­
|병력1 = 3000여명
|병력2 = 남조선로동당원 500여명<br /> 제주도민 지원자 1,000여명
|병력3 = ­
|사상자1 =군인 180여명<br /> 경찰 140여명
|사상자2 =전멸
|사상자3 =(민간인)<br /> 최대 68,000 여명
|기타 =
}}
'''제주 4·3 사건'''(濟州四三事件)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봉기로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민간인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규정되어 있다.<ref>[http://www.law.go.kr/LSW/lsSc.do?menuId=0&p1=&subMenu=1&searchName=LicLs%2C0&query=4.3#liBgcolor0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55&aid=0000394162 제주 4·3…살아남은 자들의 증언]. SBS. 2016년 4월 3일.</ref> 현창용은 1948년 제주시 노형동 자택에서 어머니와 잠을 자다 경찰에 끌려가 인천형무소에서 군사재판으로 징역 5년을 선고 받았고 박동수는 1949년 제주시 애월읍 소길리에서 군인들이 쏘는 총을 피해 달아나다 폭도로 내몰려 인천형무소에 끌려가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받았다. 폭도로 내몰려 경찰에 끌려간 뒤 제대로 된 재판도 받지 않은채 일방적으로 유죄를 선고 받고 인천형무소 수감 생존자인 현창용(86), 박동수(85)씨 등 모두 17명이 2017년 3월 28일,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와 함께 국가를 상대로 재심을 청구해 무죄를 증명할 계획이라고 하면서 행정재판인 '판결의 부존재' 소송도 동시에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4.3 당시 군사재판을 받은 수형인은 2530명, 일반 재판 수형인은 1306명이다.<ref>[http://www.jejusori.net/?mod=news&act=articleView&idxno=188983]</ref>
 
 
 
== 사건의 발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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