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 - 정치: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414번째 줄:
 
== 조사 대상자 선정 심의 과정에서 기각된 인물 ==
=== 귀족 부문 ===
* [[이종건 (1843년)|이종건]](李鍾健): 1919년 3·1 운동 직후에 조선총독부에 남작 작위 반납을 요청하고 은사공채를 반환한 사실이 인정됨.
* [[이해국]](李海菊): 자작 작위를 승계하던 당시에는 미성년자였으며 광복 당시에도 미성년자였음.
줄 419 ⟶ 420:
* [[민태곤]](閔泰崑): 1934년 12월 15일에 민규현이 받았던 남작 작위를 남작 작위를 승계받았지만 1941년 12월 일본 도쿄에서 독립 운동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된 사실이 인정됨.
* [[민태윤]](閔泰崙): 태평양 전쟁 당시에 있었던 강제 징병으로 인해 일본으로 연행된 상태였기 때문에 본인 의사와는 무관하게 민태곤이 받았던 남작 작위를 승계받은 사실이 인정됨.
 
=== 중추원 부문 ===
* [[김만수 (1858년)|김만수]](金晩秀): 조선총독부 종추원 찬의를 역임했지만 임명된 지 2개월 만에 스스로 사임함.
* [[김사묵]](金思默): 조선총독부 종추원 찬의를 역임했지만 임명된 지 2개월 만에 스스로 사임함.
* [[한동리 (법조인)|한동리]](韓東履): 조선총독부 종추원 부찬의를 역임했지만 임명된 지 2개월 만에 스스로 사임함. 변호사로 등록한 이후에 독립군 자금 모집 관련 공판에서 피로로 나섰던 독립운동가의 변호인으로 참여함.
* [[조제환]](趙齊桓):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찬의를 역임했지만 임명된 지 4개월 만에 사임함. 조선총독부 군수로 부임한 지 8개월 만에 면직됨.
* [[이원용 (1889년)|이원용]](李源鎔):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찬의를 역임했지만 임명된 지 2년 4개월 만에 사임함. 조선총독부 군수로 부임한 지 3개월 만에 사임함.
* [[허명훈]](許命勳):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역임했지만 재임 전후의 경력이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명시된 기준에 미달함.
* [[장도 (1876년)|장도]](張燾):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역임했으며 대한제국 시대에 의병 재판 판사로 참여했고 일제 강점기에는 대정친목회, 동민회 등 각종 친일 단체에 참여했음. 그러나 105인 사건 공판, 독립 운동에 참여한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공판에서 변호인으로 참여했음.
* [[박해령 (1857년)|박해령]](朴海齡):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로 임명된 지 2개월 만에 사망함.
 
== 친일반민족행위 결정 심의 과정에서 기각된 인물 ==
=== 귀족 부문 ===
* [[민형식 (1875년)|민형식]](閔衡植): 민영휘가 받았던 자작 작위를 승계받았지만 무정부주의 운동, 독립 운동 자금을 지원한 사실이 인정됨.
* [[민병억]](閔丙億): 광복 이후인 1949년 8월에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송치되었다는 신문 기사가 있었지만 민건식이 받았던 남작 작위를 승계받은 시기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음.
 
=== 중추원 부문 ===
* [[구희서 (1861년)|구희서]](具羲書): 10년 동안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찬의를 역임했지만 재임 기간 동안에 조선총독부에서 추진한 옛 관습 및 제도 조사위원으로 활동했던 사실을 친일반민족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함.
 
== 같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