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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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카히라는 파티마 왕조 시절에는 궁전과 사원([[알아즈하르 모스크]])이 있었고, 일반인은 거주가 허용되지 않은 왕성이었다. 파티마 왕조는 [[예루살렘]]을 [[기독교]]도들로부터 되찾은 [[이슬람]]의 영웅 [[살라딘]]에 의해 망했고, 살라딘은 [[1171년]] 이집트의 통치자가 된 뒤 알 카히라를 일반 시민에 개방했다. 직사각형 모양으로된 성벽 도시인 알 카히라는 이후 여러 지구(하라)로 구획됐고, 하라에는 모스크와 시장(수크), 공중목욕장(하맘) 같은 생활공간들이 들어선다. 살라딘이 연 [[아이유브 왕조]]([[1171년]]-[[1250년]])에 이어 등장한 마믈룩 왕조시대(1171-1517년)를 거치며 카이로는 당대 세계 최대의 도시로 성장했다.
 
[[1517년]] [[오스만 제국]] 셀림 1세의 정복으로 이집트는 속주가 됐고, 카이로도 영광의 빛이 바래게 된다. 18세기 후반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으로 이집트와 카이로가 유럽에 다시 알려지게 된다. 19세기 [[무하마드 알리 왕조]] 아래에서 근대 도시 카이로가 (앙기모띠 봉지살)정비돼 오늘날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됐다. 오늘날의 카이로는 파타마 왕조가 세운 왕성이 있던 지역인 '올드 카이로'를 비롯해, 피라미드가 있는 도시 서쪽의 기자, 헬리오폴리스 등으로 확대된 대도시다. 도시 남쪽의 [[마아디]]는 영국인들이 보호통치 시절에 건설한 신도시인데, 이곳에는 한국인을 포함한 외국인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다.
 
=== 현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