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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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버지인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 궁정 관현악단의 음악 감독이었는데, 볼프강의 누나인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난네를]]을 어려서부터 가르쳤고, 이를 볼프강은 지켜보았다. 세 살 때부터 볼프강은 누나를 보고, 스스로 건반을 다루고 연주하는 법을 터득했다. 아버지 레오폴트는 어린 아들의 재주를 보았고, 아들의 음악적 재능이 뚜렷이 빛을 발하게 되면서 작곡을 그만두었고 볼프강에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가르쳤다. 그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에 매우 뛰어났다. 난네를의 뮤직북에 쓰여진 레오폴트의 기록에 따르면 어린 볼프강은 네 살 때 여러 곡을 배웠다고 한다. 모차르트의 음악적 능력은 빠르게 발달하여, 다섯살 때 이미 작곡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모차르트를 믿지 못하여 일부러 모차르트의 집에 찾아와서 모차르트를 시험해 보았다. 사람들은 모차르트의 아버지인 레오폴트가 모차르트의 곡을 써주었다고 의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차르트는 그 사람들에게 뛰어난 작곡 실력과 재능을 보였고, 사람들은 그제서야 모차르트를 믿기 시작하였다. 그후 아버지 레오폴트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아들인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에게 아들을 보내 작곡하는 법에 대한 기예를 더 배우게 했다.
 
[[1777년]] 모차르트는 여행어머니와 함께 [[뮌헨]], [[만하임]], [[파리 (프랑스)|파리]]를 다니면서여행하면서 많은 음악가를 만났는데, 그 가운데 [[1764년]]에서 [[1765년]] 사이 [[런던]]에서 만난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바흐에게서 처음으로 [[교향곡]]을 작곡하는법을 배웠으며, 이게이러한 모차르트토대로 사후모차르트는 사후까지 수많은 걸작의 교향곡을 남기는 계기였다.중요한 계기가된다.
[[1777년]]에는 어머니와 함께 [[뮌헨]], [[만하임]], [[파리 (프랑스)|파리]]를 여행하였는데,
 
[[파일:Wolfgang01.jpg|섬네일|right|250px|가운데에 볼프강, 왼쪽에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 오른쪽에 [[레오폴트 모차르트]], 벽에 죽은 어머니의 초상화]]
 
모차르트는 여행 다니면서 많은 음악가를 만났는데, 그 가운데 [[1764년]]에서 [[1765년]] 사이 [[런던]]에서 만난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바흐에게서 처음으로 [[교향곡]]을 작곡하는법을 배웠으며, 이게 모차르트 사후 수많은 걸작의 교향곡을 남기는 계기였다.
 
=== 베토벤과의 만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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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Croce-Mozart-Detail.jpg|섬네일|모차르트의 초상화. Johann Nepomuk della Croce의 1780년 경 작품.]]
 
모차르트모차르트의 죽음과 그 원인에 관해대해서는 수많은 전설과전설을 비롯하여 학설이 있다많다. 낭만적인 주장으로는 모차르트의 건강이 점점 약해지면서 그의 모습과 작품 역시 다가오는 죽음과 함께 쇠퇴하였다는 것이 있다. 반면에 다른 학자들은 모차르트의 마지막 해가 그에게 성공적이었으며, 그의 죽음이 가족들에게 충격이었다는 점을 들어 그의 죽음이 급작스러웠다고 주장한다.
 
그의 죽음의 원인 또한 추측이 무성하다. 기록에는 그가 "무수히 난 좁쌀만한 발열"("hitziges Frieselfieber")로 죽었다고 되어 있는데, 현대 의학으로 진단할 수 있는 것에 비해서는 충분한 정보가 되지 못하고 있다. 사인에 대한 학설 중에는 [[선모충병]], 중독, [[류머티스열]], 덜 익힌 돼지고기에 의한 [[식중독]] 등이 있다. 환자의 피를 뽑았던 당시의 의술도 모차르트의 죽음을 앞당기는 데에 이바지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