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타르 1세 (세르비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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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민족주의자 중 한 명인 [[니콜라 파시치]]를 등용하여 [[대세르비아주의]]의 제창을 도왔다. 니콜라 파시치는 '[[세르비아인]]이 생활하는 모든 지역을 통일하여 카라조르제비치 가문의 통치 아래에 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사상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유고슬라비아 왕국|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으로 국명이 바뀌었을 때 실현되었으며, [[사회주의자]]인 [[요시프 브로즈 티토]] 정권도 받아들였다. 비록 [[1992년]]에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독립하면서 와해되었지만 세르비아인에게는 희망을 안겨주기 충분했다.
 
페타르가 즉위한 이후, 세르비아는 경제력이 성장하였고 군사력도 증강되었다. [[세르비아 육군|육군]]이나 [[1912년]]에 창설된 [[세르비아 왕국 항공대|항공대]](Srpska Avijatika. [[1923년]]에 정식으로 [[유고슬라비아 왕국 공군|공군]]이 창설된다)나 프랑스제 무기를 사용하였는데, 그가 친프랑스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1858년]]에 알렉산다르 카라됴르뎨비치가카라조르제비치가 퇴위한 이후, 45년간의 망명 생활이라는 절망스러운 시간조차도 절망하지 않은 페타르였다. 성격이 당당했던 그는 경제학과 정치학을 배웠으며 [[생시르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고, [[보불전쟁]]에서는 육군 중위로 복무한 사람이다. 사병을 잘 지휘하였다는 사실이 프랑스군 당국에도 알려져 [[레지옹 도뇌르 훈장]]도 받은 사람이다. [[세르비아]]가 비록 적대적인 오브레노비치 가문이 통치하고 있다지만 애국심이 남달랐던 그는 독립을 지원했다. 그 공로로 [[몬테네그로 공국|몬테네그로]]의 상원의원으로 지낸 경험도 가지고 있었다.
 
=== 전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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