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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 생애 ===
[[파일:Yun Ung-ryel 02.PNG|썸네일|오른쪽|아버지 [[윤웅렬]]]]
윤치창은 [[1899년]](광무 2년) [[3월 5일]] [[윤웅렬]]의 서자이자 그의 소실 [[김정순]](金貞淳)의 소생으로 태어났다. [[윤두수]], [[윤근수]] 형제의 후손이었으나 몰락했던 그의 집안은 할아버지 [[윤취동]] 지중추부사에대에 오르고농토와 재산을 마련했고, 아버지 [[윤웅렬]]과 삼촌 [[윤영렬]]이 중앙 관직에 진출하면서 다시 집안을 일으켰다.
 
그에게는 어려서 요절한 친형과 4년 연상의 친형 [[윤치왕]](후에 [[대한민국]]육군 의무감을 지냄) 등 두 명의 친형과 30세 연상인 이복 누나 윤경희, 이복 형 좌옹 [[윤치호]]가 있었다. 그밖에 삼촌 [[윤영렬]]의 손자는 [[한국]]의 초기 [[해부학]]자이자 [[병리학]]자이며 [[서울대학교]] 의대 교수였던 [[윤일선]]과 [[서울특별시장]]과 상공부장관, 제4대 대통령을 지낸 [[윤보선]]이었다. 또한 [[윤영렬]]의 아들로 그의 사촌 형은 내무부장관과 서울시장을 지낸 [[윤치영]]이었다. 12세인 [[1911년]] 아버지 [[윤웅렬]]을 여의었다.
 
소년기에 부친을 여의었으나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하였으며 [[1924년]] [[미국]]에 유학, 그해 [[9월]] [[시카고]] [[루이스 대학]] 상과에 입학했다. 이때 그는 박인준을 만났고, 미국 체류 중 그는 박인준의 외조카딸이자 [[감리교]] 목사이자 독립운동가 [[손정도]]의 딸 [[손진실]]을 만나 결혼했다. [[1928년]] 미국 [[시카고]] [[루이스 대학]] 상과를 졸업하고 귀국 후에는 개인업에 종사하였다.<ref>윤치호 일기 - 한 지식인의 내면세계 (역사비평사 | 2002) 117페이지</ref> 귀국 후 아버지 [[윤웅렬]]이 살던 [[충남]] [[아산]]의 고택<ref>윤웅렬 사후 다른 사람에게 매각되었다.</ref> 을 다시 매입, 윤웅렬 고택에서 살았다.
 
=== 기업인 활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