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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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디나로의 피신 ====
[[파일:Medina, Saudi Arabia locator map.png|섬네일|[[메디나]]의 위치]]
무함마드는 AD 619년에 큰 슬픔을 얻게 된다. 첫 무슬림 신자이자 자신의 큰 후원자였던 부인 [[카디자]]가 죽은 것이다. 또한 자신의 방패가 되어주던 삼촌 아부 딸립도 그 해에 세상을 떠난다. 무함마드는 고통속에서도 줄어들지 않는 박해와 핍박에 대항하기 위해 무슬림 공동체를 더욱 강하게 만들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핍박은 더욱 심해졌고 이를 피하여 [[622년]] [[메카]] 북방 약 400km 떨어져 있는 [[메디나]]로 갔다. 신도들도 이때를 전후하여 메디나로 피난, 그곳 협력자들(안사르)의 집에 수용되었다. 이 [[메디나]] 행을 이슬람에서는 ‘[[히즈라]]("이주")’라고 하는데, 이 해를 [[이슬람력]]의 기원으로 삼고 있다.
 
[[메디나]]에 도착한 무함마드는 칼을 들고 약탈하고 침략하고 학살하고, 무고한 사람들을 고문하고 살해하기 시작했다. 메카에서 무함마드가 말로 포교할 때 모아지던 인원은 100명 안팎이었지만, 무함마드가 칼을 들자 10억이 되었다는 말이 있다.
[[메디나]]에 도착한 무함마드는 자신의 말이 멈춘 수하일의 과수원 땅을 사서 최초의 사원과 자신의 집을 지었다. 그리고 [[메카]]를 향해 하루에 다섯 번씩 [[알라]](하느님)는 위대하다고 암송하며 절했다. 무함마드는 [[메디나]]에서 선지자의 권위를 확립하고 아라비아 부족의 통일을 꿈꾸기 위해 종교적인 일과 세속적인 일을 구별하지 않는 형태의 이슬람 조직 체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즉 제정일치의 사회를 무함마드는 추구했다.
 
==== 메카정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