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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양현 작가(토론)의 편집을 Ykhwong의 마지막 판으로 되돌림
* [[마거릿 대처]] : 영국의 총리
* [[로널드 레이건]] : 미국의 대통령
* 율곡 이이 : 조선왕조의 보수주의자
 
보수주의 정치철학(탁양현 지음)
 
‘從俗主義的 事大主義’와 ‘現實主義的 資本主義’
‘율곡 이이’는 朝鮮을 대표하는 保守主義者다. 그리고 ‘에드먼드 버크’는 영국을 대표하는 보수주의자다. ‘율곡 이이(1537~1584)’와 ‘에드먼드 버크(1729~1797)’ 두 사람 사이에는, 2백 여 년에 가까운 시공간적 間隙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시공간적 간극을 넘어서서, 두 사람은 동일한 보수주의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렇지만 그들의 保守主義는 동일한 것이 아니다. 두 가지 보수주의의 차이는, ‘從俗主義的 事大主義’와 ‘現實主義的 資本主義’로서 분별될 수 있다. 이에, 두 가지 보수주의의 차이에 主眼하여 論述하였다. 이로써,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의 보수주의는, 하나의 參照的 指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保守主義는 當代의 時代精神을 의미한다. 말 그대로 그 시대에 보존하여 지킬만한 것을 주장하는 정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시대정신에 대항하여 등장하는 精神性은, 흔히 進步主義로서 지칭된다. 그래서 진보주의는 시대의 급격한 변화를 요구한다. 따라서 역사 속 시대정신은,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로 大別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보수주의’는, 1945년 광복 이래로, 정치적 自由民主主義와 1950년부터 1953년까지 치러진 韓國戰爭과 국제적인 冷戰對立으로 인해 강화된 反共主義 및 韓美同盟, 제5공화국과 1997년 외환위기로 확산된 新自由主義 등, 4가지를 주요한 구성요소로 삼고 있다.
더불어 美國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의 절대적 영향력으로 인해, 親美的인 성격과 反共主義가 강하다. 이로 인해, 한국의 보수주의는 한국 특색의 보수주의라기보다는, 美國的 保守主義의 하나의 分派라고 부를 수 있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 조선왕조의 중국에 대한 事大主義가 비판의 대상이듯이, 미국에 대한 사대주의 역시 비판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현대의 대한민국이 과거에 비해 나아진 측면은, 패권국과 君臣關係로서 작동하던 ‘조선왕조의 事大主義’가, 패권국과 同盟關係로서 작동하는 ‘대한민국의 同盟主義’로 변화되었음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親美主義者가 되어서 무작정 미국을 옹호한다면, 그것은 ‘조선왕조의 事大主義者’와 별다를 게 없다. 親中主義者의 경우도 매한가지다. 현대의 국제정치의 場에서,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國家의 존속이며, 이를 위해 ‘생존의 이득(國益)’을 도모해야 함이다.
21세기의 국제사회는, 과거에 비해 武力的 戰爭보다는 經濟力을 활용하여 분쟁을 해소하는 경우가 許多하다. 그래서 실제적으로 죽거나 다치지 않으므로, 아주 人權主義的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어찌보면 훨씬 잔혹한 방편이, 경제적(물질적)으로 서서히 말라죽이는 經濟戰爭(貿易戰爭)이다. 그러니 이러한 泥田鬪狗의 국제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自國의 ‘생존의 이득(國益)’을 반드시 지켜내야 함은, 실로 不得已다.
영국은 보수주의의 기원이기 때문에, 많은 보수주의 정치가를 배출했다. ‘에드먼드 버크’ 이후, 대표적으로 ‘벤저민 디즈레일리’, ‘윈스턴 처칠’, ‘마거릿 대처’ 등이 꼽힌다.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제국주의와 결합된 보수주의를, ‘윈스턴 처칠’은 소련에 대항한 반공주의와 결합한 보수주의를 추구했다.
그리고 ‘마거릿 대처’는, 정치적으로는 反共主義를 추구했으며, 경제적으로는 親市場主義的 경제정책을 도입하여, 영국의 福祉病을 해결하고자 했다. 장기간의 노동자 파업을 진압하고, 주요 국영 기업을 민영화였으며, 사회 복지 혜택을 감축했다. 외교적으로는 영국의 ‘유럽 공동체(EC)’ 가입을 거부하는 입장이었다.
 
조선왕조의 理想主義는 道德主義로써 통치했다. 그러한 바탕에는 중국이라는 覇權國에 대한 事大主義가 작동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패권국을 능가할 만한 역량을 지니지 못했다면, 그 나름의 방편으로써 ‘생존의 이득’을 도모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국가공동체의 멸망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現實主義는 資本主義로써 통치한다. 그러한 바탕에는 미국이라는 패권국에 대한 事大主義가 작동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사대주의는 조선왕조의 것과는 다르다. 조선왕조는 유교철학적 군신관계에 의한 사대주의였다. 그러나 현대의 사대주의는 동맹관계에 의한 것이다.
다만, 사대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패권국은, 자기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언제라도 폭력을 사용할 수 있는 탓이다. 자본주의는 ‘생존의 이득’을 목적하는 경제체제이다. 그러한 시대에 조선왕조의 ‘이상주의적 도덕주의’를 대비시킴은, 좋은 대조가 된다.
결국 조선왕조가 멸망에 이르는 역사적 과정을 체험하였기 때문이다. 도덕주의가 주도하는 사회는 오히려 폭력적이며, 전혀 이상적이지 못하다. 그에 대한 역사적 사례를, ‘율곡 이이’와 ‘에드먼드 버크’를 통해 검증할 수 있다.
 
== 분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