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륭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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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정과 부패 ===
건륭제가 청년, 중년 때에는 부황 옹정제처럼 주필(朱筆)을 하여 관리들을 항상 감찰하는 등 기강을 엄정히 하여 관리들의 횡령이나 [[탈세]]같은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고 일어나더라도 그 금액은 적었다. 그러나 건륭제가 나이가 들면서 중앙과 북경 주변의 정무만 처리하고 주필을 쓰는데 소홀해졌으며 각 성의 탄원이나 정책은 각 성의 총독, 순무가 재량껏 처리하게 내버려 두는 등 느슨하게 대하였다. 이에 따라 건륭제의 감시망에서 벗어난 지방 관리들이 백성들과 상인들을 상대로 착복과 횡령, 탈세를 자주 하였고 그 연관된 금액도 매 건당 수십만 냥을 웃돌았다. 건륭제의 치세 동안 황하에서 7건의 홍수 범람 사태가 발생하여 건륭제가 구호 자금을 보내주었으나 중간에서 관리들이 모두 횡령한 바람에 치수 공사가 진척을 이루지 못한 적도 있었다.<ref name="염숭년"/> 그 이후로는 점점 심해져 중앙에서 처리해줄 강력하고 청렴한 고위 관리들이 나타나지 않아 지방의 말단관리부터 재상급인 수석군기대신(首席軍機大臣)까지 연관되어서 집단 뇌물수수 사건까지 발생하는 등 심각해졌다. 건륭제 치세 중기 때부터 군기대신 [[우민중]]은 청렴과는 거리가 멀고 스스로 막대한 사익을 취하며 대신들 사이에서도 뇌물이 오가기 시작하였다. 이에 하급 관리들 역시 서로 뇌물수수를 눈감아주고 과거시험에서도 일정한 돈을 지불한 대가로 그 응시자에게 합격시켜 주는 등 그 비리가 계속되면서 [[감숙성]]에서 청 제국 최대의 뇌물수수 사건인 감숙모진안(甘肅冒賑案)이 발생하였다.<ref name="검찰일보">{{웹 인용
| url = http://review.jcrb.com.cn/ournews/asp/readNews.asp?id=128724
| 제목 = 왕단망의 뇌물수수사건(王亶望貪縱牽出連環窩案)
|확인날짜 = 2010-02-06
| 저자 = 탄광룽
|날짜 = 2002-12-10
|형식 = HTML
|웹사이트 =
|발행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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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 중국어
|원본일자 =
|인용 =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11203120047/http://review.jcrb.com.cn/ournews/asp/readNews.asp?id=128724#
|보존날짜 = 2011-12-03
|깨진링크 =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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