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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orean.Folk.Village.Misokchon-14.jpg‎|left|섬네일|200px|한국민속촌(기흥구 보라동)에서 재현되는 전통혼례]] 『여지도서』에 기곡면과 구흥면의 위치와 편호 및 남녀별 인구의 기록이 확인되고 구흥은 역참제의 역원이 있던 지역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구흥역은 현 남쪽 5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역(驛)이 두 개 있는데, 구흥(駒興)과 금령이 그것이다. 구흥의 본 이름은 용흥(龍興)인데, 정승 하륜(河崙)이 지나다가 이르기를, "용흥은 참역(站驛)의 이름으로는 맞지 아니하다."하고,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라는 기록이 있다.
 
[[2005년]] 구의 이름을 정하던 당시 옛 구성읍(駒城邑)의 '구'(駒)와 기흥읍(器興邑)의 '흥'(興)을 따서 붙인 이름인 '구흥구(駒興區)'로 정할 예정이었으나 [[삼성전자]]와 주민의 반발로 인해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기흥구라는 이름이 38.5%로 6.1%인 구흥구를 앞질러 기흥구로 확정했다. 용인시 기흥구의 행정지명은 구갈동, 구성동, 기흥동, 동백동, 마북동, 보정동, 상갈동, 상하동, 서농동, 신갈동 등 10개 법정동을 관할하고 있다.<ref name="기흥구">한국일보 : [http://news.hankooki.com/lpage/economy/200505/h2005052719194921540.htm 삼성전자 '기흥' 지명 지켜냈다]{{깨진 링크|url=http://news.hankooki.com/lpage/economy/200505/h2005052719194921540.htm }}</ref>
 
[[보정동]]은 현재 연원부락에 보수원이 있었고 그곳에 큰 정자가 있었다고 하여 보정리라 칭하였다. 독정마을은 옛날에 마을 앞에 따로 큰 정자가 있었다. 이씨 성을 갖은 선비가 과거 공부를 하기 위 하여 정자 밑에 움막을 짓고 공부를 하여 과거에 합격한 후 집으로 돌아가보니 노부모님들이 모두 돌아가시고 폐가가 되어 있어 오갈데없는 이씨선비는 과거공부 하던 곳으로 돌아와 거처를 정하고 정착하게 되어 마을을 형성하게 되었으며 마을 이름도 홀로 서있는 큰 정자나무(느티나무로 추정됨)와 인연이 되어 홀로 독(獨)자와 정자 정(亭)자를 사용하였으나, 일제치하에서 홀로 독자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개명되어 행정명칭 으로 두터울 독(篤)자로 고쳐 쓰게 하였다. 또한 마을 상류에 조선시대에 독을 만들던 가마터가 있어 독쟁이라 고하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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