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키 히데야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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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쇼 2년([[1574년]]) 2월 8일,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차남으로 [[도토미 국]] [[하마마쓰]](浜松)에서 출생하였다. 그러나 당시 이에야스의 거성인 [[하마마쓰 성]]이 아닌 성하 敷知郡의 우부미 촌(宇布見村)에서 태어났다. 생모는 [[미카와 국|미카와]] 출신으로 池鯉鮒明神을 모신 지류 신사(知立神社)의 샤닌(社人)이었던 [[나가미 요시히데]](永見吉英)의 딸이자 이에야스의 측실인 오만노가타(於万の方, 조쇼인長勝院)이다.
 
오만은 원래 이에야스의 정실 [[쓰키야마도노]](築山殿)의 시녀로, 오만이 히데야스를 임신하자 쓰키야마도노의 분노를 두려워한 이에야스가 중신 [[혼다 시게쓰구]](本多重次)에게 보내 아이를 낳게 하였다.<ref>혼다 시게쓰구가 히데야스의 출생과 양육을 담당하게 된 데에는 여러 설이 있다. 첫째는 오만의 임신을 알게 된 쓰키야마도노가 격노하여 오만을 나무에 매달아 놓은 것을 혼다 시게쓰구가 우연히 발견하여 제 집으로 데려와 보살폈다는 설, 둘째는 쓰키야마도노의 화를 두려워한 오만이 친척인 혼다 한에몬(本多半右衛門)의 집으로 도망쳐 오자 혼다 한에몬이 다시 혼다 시게쓰구에게 알려 혼다 시게쓰구가 오만을 책임지게 되었다는 설, 셋째는 이에야스가 오만에게 혼다 시게쓰구의 집으로 가서 아이를 낳으라고 명령하였으나 오만은 이를 거부하고 친척이자 한때 이에야스의 시녀였던 혼다 한에몬의 백모에게로 가 아이를 낳았다는 설 등이다. 「에치젠 가전(越前家伝)」.</ref> 히데야스는 [[미나모토노 노리요리]](源範頼)의 후손으로 당시 우부미 마을에 거주하며 이마가와 씨(今川氏) 시절부터 현지의 대관(代官)이나 하마나 호수(浜名湖) 주변의 선박과 군량미 업무를 맡았던 영주 [[나카무라 마사요시]](中村正吉)의 저택에서 태어났는데, 이 때 부친 이에야스가 나카무라 마사요시의 집에 직접 심은 소나무 「히데야스의 배내옷 무덤」(秀康の胞衣塚)이 현존하는 마사요시의 저택(건축물은 에도 초기에 세워짐) 경내에 남아 있다. <ref>{{웹 인용 |url=http://www.city.hamamatsu.shizuoka.jp/lifeindex/enjoy/culture_art/nakamurake_jutaku/index.htm |제목=하마마쓰시/중요문화재 나카무라가 저택 |확인날짜=2012-09-14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10907065323/http://www.city.hamamatsu.shizuoka.jp/lifeindex/enjoy/culture_art/nakamurake_jutaku/index.htm |보존날짜=2011-09-07 |깨진링크=예 }}</ref> 이러한 인연으로 [[에도 막부]] 이후 역대 [[후쿠이 번]](福井藩) 번주들은 [[산킨코다이]](参勤交代) 때마다 나카무라 가문에서 공응을 받는대접받는 관례가 이어지고 있다.
 
또한 히데야스는 쌍둥이로 태어났다는 설도 전해지고 있다.<ref>나머지 한 명은 태어나자마자 바로 죽었다고 하나 일설에 따르면 [[나가미 사다치카]](永見貞愛)라는 인물이 바로 이 히데야스의 또다른 쌍둥이 형제라고도 한다. 당대에는 둘 이상을 낳는 것은 짐승들에게나 있는 일이라고 하여 쌍둥이를 경시하는 풍조가 있었는데, 일각에서는 히데야스가 부친 이에야스에게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을 히데야스가 쌍둥이로 태어났기 때문이며,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쌍둥이한다. 형이나머지 한 명은 태어나자마자 바로 죽었다고 하나 일설에 따르면 [[나가미 사다치카]](永見貞愛)라고라는 주장하기도인물이 바로 이 히데야스의 또다른 쌍둥이 형제라고도 한다. 『바쿠후 부녀 계보(柳営婦女伝系)』 제 1권 속군서류종완성회(続群書類従完成会). </ref> 아명은 '''오기마루'''(於義丸)이다.<ref>일설에 따르면 히데야스가 [[동자개]](빠가사리, 일본어로는 기기ギギ)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ref>
 
=== 불행한 유소년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