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궁과 월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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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 및 논란==
안압지의 세 전각이 우선 복원된 상태인데, 일부에서는 복원을 잘못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각의 구조는 그럭저럭 원형의 모습을 최대한 반영하여 복원한 것 같지만, 예를 들면 안압지에서 출토된 화려한 금속 장식물들을 전혀 활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라시대의 궁궐 건축물은 금속 장식물로 사치를 부리는 것을 경계했던 조선시대와는 달리 서까래나 난간 끝에 일일이 금동으로 된 장식 마개 등을 달았고, 덕분에 햇빛이 비치는 날은 건물이 금빛으로 번쩍거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유물들이 출토되어 버젓이 경주박물관 월지관에 전시중임에도 불구하고 복원된 건물에는 하나도 쓰이지 않았다. 기와의 경우 섬세하게 조각된 장식기와를 활용한 것은 좋지만 마무리가 좀 어설픈 편이다. 단청의 경우에도 논란이 되는데, '''일반적으로 고려 말~조선시대부터 유행한 상록하단 단청을 입혀놨기 때문.''' 다만 발굴된 단청 항아리에 녹색 안료가 포함되어 있었으므로 상록하단의 경향이 삼국시대에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없고 당나라신라시대에 시기까지는 녹색 안료만을 바탕색으로 하는 상록하단이 아직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남북국시대나 고려 초중기까지는 상록하단 단청이 쓰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 당나라 서안 중보촌당묘 건축명기나 일본 당초제사에 있는 8세기 무렵의 청록색 계열의어떤 단청을 보면칠했는지에 녹색대한 바탕색만을확실한 사용하지자료가 않고없어서 파란색이나 흰색, 주황색 등 다양한 바탕색을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보아 송나라 이전까지는 동아시아 건축에서 녹색을 단일로 쓰는 상록하단 단청 양식은부분은 존재하지결론이 않았던 것으로나는 보인다상황.
 
== 명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