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티유 습격: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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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퇴양란->진퇴양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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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티유 습격” 소식은 즉각 베르사유 궁전에 있는 국왕 루이 16세에게 알려졌다. 국왕은 “폭동 인가?”(C'est une révolte?) 물었고, 측근인 라 로슈푸코 리앙쿠르 공작은 “아니오 폐하, 이것은 폭동이 아니라 '혁명'입니다”(Non sire, ce n'est pas une révolte, c'est une révolution)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국왕 정부를 경악시키고 정책의 변화를 재촉했다. 루이 16세는 군대의 파리 철수와 네케르의 복직을 결정하고 또한 스스로 파리에 가서 새로운 파리 정부 당국과 부르주아의 민병대인 ‘국민 가드’를 승인했다. 이 시정 혁명으로 인해 프랑스 각 도시에서 부르주아로 구성된 상임위원회가 설치되어, 시정의 실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한편, 루이 16세의 파리행보와 네케르 복직을 제1, 제2 신분 및 왕족들은 민중에 대한 양보로 받아들였다. 왕족이나 귀족들은 혁명에 대한 무력행사도 불사할 자세를 취하며 국왕에게 압력을 가했다. 무력행사에 소극적이었던 루이 16세는 국민 의회와 국왕 정부 사이에서 진퇴양란에진퇴양난에 빠졌고, 또한 마비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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