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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년, 신성 태수 맹달이 촉한의 제갈량과 내통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사마의를 그 진압의 책임자로 임명하여 맹달의 목을 베었다. 이것은 촉한이 신성을 통하는 침공 루트로 위를 협공하는 것을 막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촉한의 1차 북벌 때 위가 가정에서 승리하는 것에 간접적으로 기여했다. 이후 제갈량의 5 차례에 걸친 침공 때 황족인 조진 , 사마의와 장합 등 할아버지 조조대부터 활약한 장군들을 이용하여 이들을 막아내었다. 또한 1 차 북벌 때는 친정 하여 장안 방면의 동요를 진정시켰다.
 
234 년 오나라가 동쪽에서 촉의 북벌에 호응하여 협공했다. 이 때 만총은 합비(合肥)의 수비는 포기하고 수춘에서 손권에게 맞서자는 계획을 세웠다. 조예는 이를 따르지 않고 "옛날 한 광무제는 군대를 파견하여 멀리 약양을 점거하고 외효를 격파하였으며, 선대 황제는 동쪽에 합비를 두고 남쪽에 양양을 지키게 하고 서쪽에는 기산을 지키게 하였는데, 땅에는 반드시 싸워야 할 곳이 있는 법이다." 라고 결전의 의지를 보여준 후, "여러 장수들에게 명령하니 수비를 굳게 하면 내가 장차 직접 가서 그들을 정벌할 것이지만, 내가 도착할 때면 손권은 아마도 도주했을 것이다." 라고 예측하며 동쪽으로 친정하였는데 그 예측대로 손권은 조예가 미처 도착하기도 전에 도주하였다. 만총의 의견을 따르지 않은 조예의 예측으로 인해 위나라는 합비를 지켜낼 수 있었다. 한편, 오장원에서[[오장원]]에서 제갈량과 대치하는 사마의에게 "결전을 회피하고 지구전에 돌입하며 후퇴시에는 추격하라"는 조서를 내어 방어의 성공에 기여했다.
 
238 년 요동의 공손연이 위에에 대한 반란을 일으키자 조예는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 쓰고 정벌을 결행했다. 사마의의 판단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전권을 위임한 결과, 반란의 조기 진압에 성공했다. 요동의 공손씨를 제거함으로써 촉한의 침입 때 후방에서 공손씨가 호응할 염려를 끊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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