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롤루스 대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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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롤루스 왕조|카롤루스}}
 
'''카롤루스 마그누스'''({{llang|la|Carolus Magnus}}, {{llang|de|Karl der Große|카를 데어 그로세}}, {{llang|en|Charlemagne|샬리메인}}, {{llang|fr|Charlemagne|샤를마뉴}}, {{llang|es|Carlomagno|카를로마뇨}}, [[740년]] 혹은 [[742년]] [[4월 2일]] 또는 [[747년]] ~ [[814년]] [[1월 28일]])는 [[카롤링거 왕조]] [[프랑크 왕국]]의 2대 국왕이다. "마그누스"는 "위대하다"는 뜻이다. 그가 살아있을 당시의생전 이름은 Karulus이고, 칭호는 Korolus magunus이다. 카롤루스 대신 샤를마뉴라고 불리기도 한다.
 
카롤루스는 서부, 중부[[유럽]] 대부분을 차지해 [[프랑크 왕국]]을 제국으로 확장했다. 재임하는 기간 동안 [[이탈리아]]를 정복하여 [[800년]] [[12월]] [[교황]] [[교황 레오 3세|레오 3세]]에게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와 반대되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직을 수여 받았으며, 황제가 된 후되고서 교회를교회 통해 예술, 종교, 문화를 크게 발전시켜 [[카롤링거 르네상스]]를 일으켰다. 카롤루스의 국내외적인 카롤루스의 업적은 서유럽과 중세시대를 정의하는 데 기여하였으며이바지했으며,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신성 로마 제국]] 등의 재임연표에서는재임연표에서 [[샤를 1세]] 또는 [[카를 1세]]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 [[피핀 3세|피핀]]의 뒤를 이어 동생인 카를로만과 함께 왕국을 통치하였으나 후에 사이가사이 나빠지자 전쟁의 위기가 닥쳐왔으나닥쳤나 카를로만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고비를 넘겼다. 프랑크 왕국을 위협하던 [[사라센]]과 전쟁을 일으키던 중 무훈시 [[롤랑의 노래]]에서 언급되었던 [[론세스바예스 전투]]([[779년]])에서 끔찍한 패배를 겪기도 하였으나 교황의 보호자가 된다는 아버지의 정책을 계속 시행해 나아갔다. 778년부터 802년까지는 이베리아 반도의 사라센인들을 격퇴하였다. 또한 [[롬바르드 왕국]], [[사라센]]과의 장기전쟁을 끝낸 후 유럽 동쪽에 사는 민족 중 특히 [[작센족]]을 778년부터 800년대까지 수시로 원정, 굴복시켜 가톨릭교로 개종시킨 후 자신의 영토로 이주시켜 훗날 오토 왕조 출발에 발판을 마련하였다.
 
오늘날 카롤루스는 프랑스, 독일 군주의 시초 인물뿐만 아니라 [[로마 제국]] 이후 최초로 대부분의 서유럽을 정복하여 정치적, 종교적으로 통일 시켰으며 또한 [[카롤링거 르네상스]]는 현재 유럽의 정체성에 발판을 마련하였기 때문에 ‘유럽의 아버지’로도 불린다. 사후 그는 '대제'로 번역되는 마그누스(라틴어) 또는 마뉴(프랑스어)의 칭호를 얻었으며, 이에 따라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카롤루스 대제 또는 샤를(라틴어 이름 카롤루스의 프랑스어 발음)마뉴라고 불린다. 또한, 독일에서는 카를 대제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