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소카와 모리히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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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2월 [[구마모토현]] 지사로 취임하여 [[1991년]]까지 지냈고, [[1992년]] [[5월 22일]]에 [[일본신당]]을 결성함과 동시에 당 대표로 취임하였다. [[1993년]] [[8월]]에 치러진 중의원 총선거에서 집권 [[자유민주당 (일본)|자유민주당]]이 과반수 의석을 얻는데 실패함에 따라 호소카와가 이끄는 일본신당을 비롯한 7개 야당들의 연립 정권 논의가 시작되었고, 호소카와가 총리 후보로 지명되어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가결되었다. 이에 따라 [[1955년]] 이후 38년 만에 정권 교체를 실현시켜 비자민당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총리가 되었다. 총리로 취임할 당시 전후 역대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74%라는 높은 지지율을 얻기도 했다.
 
그는 과거사 문제와 관련하여 "[[태평양 전쟁]]은 침략 전쟁이며, 잘못된 전쟁이었다"라고 말하면서 일본의 과거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침략·전쟁 행위를 시인하는 등 사과와 반성을 표명하기도 하였을 뿐만 아니라, 1993년 11월 [[대한민국]] [[경주시|경주]]를 방문하여 [[김영삼]]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을 당시 일본의 한반도 식민 통치를 지배한 것에 대해 "참기 힘든 고통을 끼쳤다. 우리의 행위를 깊이 반성하며 마음으로부터 사과드린다"라고 사과와 유감을 표명하기도 하였다.<ref>[http://www4.hankooki.com/lpage/special/200205/se200205201144585090.htm 韓日문화 통합력은 세계에 새희망 전파] {{웨이백|url=http://www4.hankooki.com/lpage/special/200205/se200205201144585090.htm# |date=20081205021640 }} [[한국일보]]</ref>
 
그러나 이듬해인 [[1994년]] [[4월 28일]], 정치자금 문제로 인해 정치권이 들썩이자 돌연 총리직 사퇴를 선언하였으며, 이후 발생한 내분으로 인해 비자민 연립정권은 불과 10개월만인 1994년 6월에 붕괴되고 말았다. [[5월 30일]], 도쿄 니시 신주쿠 게이오 플라자 호텔에서 일본 신당 총회에 참석한 후 범인의 저격 위협을 받았으나 무사하였다. 범인은 노조에 마사가스로 침략전쟁 발언에 강한불만을 품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그는 [[1998년]] [[5월 7일]]에 환갑을 맞이하여 중의원을 사퇴함과 동시에 정계를 은퇴, [[도예가]]로 활동하다가 [[2014년]] [[1월 14일]] 도쿄 도지사 후보에 출마했으나, [[마스조에 요이치]] 후보에게 패해 낙선했다. 2004년 여름에는 대한민국의 [[경상남도]] [[산청군]]을 방문하여 도예가 민영기씨와 함께 도자기를 만든 바 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0744930 日 전 총리 한국서 도자기 작품활동] [[연합뉴스]]</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