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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파일:%EA%B9%80%EA%B5%AC%ED%9C%98%ED%98%B8.JPG|섬네일|141px|조선일보 복간을 축하, 김구의 친필휘호]][[1920년]] [[3월 5일]] 대정실업친목회에 의해 창간되었다.
창간된 지 1개월만에 [[영친왕]]과 일본 왕족인 마사코([[이방자]])와의 강제결혼을 비판하는 기사로 인해 압수 당한 것을 시작으로 8월에는 방한한 미국 의원단을 환영하는 조선인들을 일본 경찰이 부당하게 탄압했다고 비판하는 논설 '自然(자연)의 化(화)'를 실었다가 1주간 정간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초반기에 조선일보의 사주였던 [[송병준]]과 경영진들은 친일성향이 강했고, 그 이후 창립 극초반기의 조선일보는 친일 성향이 유지되었다. 결국 창업주 [[조진태]] 사장이 그의 친일성향때문에 강제 퇴진당하고 2대 사장 [[유문환]]이 취임했다. 그 후에도 같은 해 9월에 "당국의 소위 [[문화 통치]]는 奇怪(기괴)치 아니한가" 라는 논설로 인해 무기 정간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1924년 이전까지 조선일보는 친일적인 성향이 유지되었는데, 대정실업친목회의 영향이 강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후 1924년에 신석우가 조선일보를 인수하면서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하는 반일 민족주의 신문으로 변화하고, 그 이후 3대 사장인 [[안재홍]]은 "함께 일어나 지켜야 하고, 싸워야 하고, 고쳐가야 하고, 이를 방해하는 어떤 자들이고 부숴 치워 버려야 할 것이다."라는 논설 등을 써서 일제에 저항했고 4차례의 옥고를 치렀다. 4대 사장인 [[이상재]]가 취임한 후에는 [[신간회]] 결성을 주도하고 [[문자보급운동]]의 일환으로 한글 교재를 무상 배포하는 등 문화보전에 힘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