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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aishuOuyangxun.jpg|섬네일|구양순의 구성궁예천명]]
'''구양순'''(歐陽詢, [[557년]]~[[641년]])은 [[중국]] [[당나라]] 초기의 [[서예가]]이다.[[후난]] 출신으로 남방 문화권에서 성장하였다.[[진나라]]의 광주지사였던 부친이 죽음을 당하자 아버지의 친구인 강총에게서 양육되었다. [[수 양제]] 때에는 태상박사를 지냈고, [[당 태종]] 때에 태자솔경령이라는 벼슬을 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구양 솔경'이라고 불렀다.626년 20여만권의 책을 모아놓은 [[홍문관]]의 학사가 되어 숙지하며 연구하였다. [[우세남]]과 지량,요사렴,채율공,소덕언 등 과 함께 [[학사]]로 발탁되었다. 구양순은 [[전서]], [[해서]],[[초서]] 등의 모든 서체들을 다 잘하였으나 그 중에서도 [[해서]]가 가장 훌륭했다. 그의 뛰어난 필체는 멀리 [[고구려]]에까지 알려졌다. 처음에는 [[왕희지]] 체와 비슷했지만 뒤에 독자적인 서체를 세워 [[해서]]의 규범이 되었으며 당 [[태종]]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었다. 그리고,그의 해서는 필력이 기이하고 힘이 넘쳐 당시 최고로 뽑혔으며 [[필획]]이 팽팽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어 긴 문장을 써도 전체적으로 하나로 통일된다. 그 안에는 문화 특유의 섬세함과 얌전한 생동감, 깊은 감이 글자안에 담겨져있다. [[우세남]]·[[저수량]]과 더불어 당나라 초기의 3대 서예가로 손꼽힌다. 작품으로 <구성궁예천명>, <고근복묘지명> 등이,<화도사탑명>, 남아<황보탄비>. <온언박비>, 등의 해서 및 예서인 <방언겸비>, <몽존첩>, 기다 구양순의 <천자문>등이 있다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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