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양라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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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1963년]] [[9월 15일]]에 한국 최초의 라면으로 출시되었으며<ref>{{웹 인용|url=http://media.daum.net/economic/industry/view.html?cateid=1038&newsid=20090914181518426&p=fnnewsi
|제목=국내 최초 라면 ‘삼양’ 맛 보세요|확인날짜 =|저자= 윤정남 기자|날짜 = 2010-09-06|출판사=파이낸셜뉴스|원본일자=|인용=}}</ref>,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피폐해진 한국의 식량난 타개를 목적으로, 주식인 [[쌀]]을 대체하여, 쉽고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식품을 공급하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ref>{{웹 인용|url=http://www.econotalking.kr/xe/?document_srl=20667|제목=삼양식품 전중윤 명예회장, ‘정직과 신용’ 일편단심|확인날짜 =|저자= 윤정남 기자|날짜=2009-09-14|출판사=월간 경제풍월|원본일자=|인용=}}{{깨진 링크|url=http://www.econotalking.kr/xe/?document_srl=20667 }}</ref> 이 제품은 삼양식품의 설립자인 전중윤 회장이 [[일본]]의 《[[묘조 식품|묘-죠-쇼쿠힌]]({{llang|ja|明星食品|명성식품}})》에서 라면 기계 2대를 들여서 생산하기 시작하였다.<ref>{{웹 인용|url=https://www.samyangfood.co.kr/pr_2_view.asp?page=4&seq_no=16&search=&searchtext=|제목=한국 라면의 원조|확인날짜 =|저자= 윤정남 기자|날짜=2005-05-25|출판사=아사히신문|원본일자=|인용=}}{{깨진 링크|url=https://www.samyangfood.co.kr/pr_2_view.asp?page=4&seq_no=16&search=&searchtext= }}</ref>
 
닭고기 스프와 제품의 주황색 표지에 중량 100g에 10[[대한민국 원|원]]의 가격으로 처음 선보였다. 3년간 시행 착오를 거쳐 대한민국의 시장 점유율 1위로 대표 라면으로 사랑을 받았으나, [[1989년]] 《공업용 쇠기름 사건》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ref>{{웹 인용|url=https://www.samyangfood.co.kr/brand/brand_history.asp|제목=브랜드의 역사 (Brand history) - 삼양식품과 삼양라면의 탄생 배경|출판사=[[삼양식품]] 홈페이지|확인날짜=[[2008년]] [[6월 23일]]|확인날짜=2017년 4월 7일|보존url=https://archive.is/20040622140908/https://www.samyangfood.co.kr/brand/brand_history.asp|보존날짜=2004년 6월 22일|깨진링크=예}}</ref><ref>{{웹 인용|url=http://contents.archives.go.kr/next/content/listSubjectDescription.do;jsessionid=AC70E6525154584E8C51319B30014804?id=001624|제목 = 라면 공업용 수입우지 사건 |확인날짜 = 2009-07-24|저자 = 하상도(중앙대학교 식품공학과 조교수)|날짜= 2006-12-01|출판사=|원본일자=|인용=|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60304130018/http://contents.archives.go.kr/next/content/listSubjectDescription.do;jsessionid=AC70E6525154584E8C51319B30014804?id=001624#|보존날짜=2016-03-04|깨진링크=예}}</ref>
 
== 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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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6공화국|제6공화국]](대통령 [[노태우]])에 접어들어, [[1989년]] [[11월 3일]] 라면에 공업용 쇠기름을 사용한다는 투서를 받고, 검찰이 《보건범죄 단속에 대한 특별조치법》과 《[[식품위생법]]》으로 삼양식품과 관련 업체 5개사 대표를 구속 입건하였다. 검찰은 삼양라면이 “비누나 윤활유 원료로 사용하는 공업용 수입 쇠기름을 사용해 라면 등을 만들어 시판했다”고 발표했고, 언론은 ‘공업용우지’라는 선정적인 용어를 이용하여 국민들을 혼란에 빠트렸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donga.com/3/all/20170827/86025686/1|제목=[백 투 더 동아/8월27일]공업용 쇠기름 누명 쓴 라면업체 ‘무죄’|날짜=2017-08-27|뉴스=news.donga.com|언어=ko|확인날짜=2018-06-04}}</ref>
 
[[1989년]] [[11월 6일]] 보건사회부장관 김종인이 라면이 인체에 무해하다는 판정을 내렸고, [[11월 28일]] 구속자 전원이 석방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인해 기업의 신뢰도는 떨어지고, 생산판매가 중단되면서, 직원들의 퇴사로 일자리를 잃었으며, 점유율이 급격히 하락하여 회사의 존폐 위기에 몰렸다.<ref>{{웹 인용|url=https://www.samyangfood.co.kr/pr_4.asp|제목=라면 공업용 수입우지 사건 |확인날짜 = 2009-07-24|저자 = 하상도(중앙대학교 식품공학과 조교수)|날짜= 2006-12-01|출판사=삼양식품|원본일자=|인용=|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50403234812/http://www.samyangfood.co.kr/pr_4.asp#|보존날짜=2015-04-03|깨진링크=예}}</ref>
 
[[2009년]] 9월 최초의 맛을 재현한 닭고기 국물맛 삼양라면이 '더 클래식'이라는 부제를 붙여 따로 출시되었다. 그러나 이후 단종되었다.
 
[[2010년]] [[3월 23일]] 창업주인 [[전중윤]] 회장이 명예회장으로 물러나고, 전인장 회장이 취임했다.<ref>[https://www.samyangfood.co.kr/pr_2_view.asp?page=1&seq_no=49&search=&searchtext= 삼양식품, 회장 이취임식]{{깨진 링크|url=https://www.samyangfood.co.kr/pr_2_view.asp?page=1&seq_no=49&search=&searchtext= }}, 2010년 3월 23일</ref>
 
=== 삼양라면 구매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