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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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의 기원을 찾자면 인류의 역사 초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가장 오래된 실정법인 기원전 18세기의 [[함무라비 법전]]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해보복(同害報復) 사상에 입각한 형벌을 제시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술술~논술] 사형, 생명권 제한인가 범죄 억제력인가 |url=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07&no=629054 |출판사=매일경제 |저자=박민건 |날짜=2007-11-16}}</ref> 사형은 역사상 가장 오래된 형벌이다. 일례로, 구약성서에서 알 수 있는 당시 율법(토라)은 대부분 사형으로 범죄를 응징하고 있다. 한편, [[고조선]]의 [[8조금법]]에도 "사람을 살해한 자는 죽음으로 갚는다."는 조항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사형이 집행됐음을 알 수 있다.
 
영국에서는 1500년부터 1550년까지 7만 명 이상이 사형으로 목숨을 잃었다. 화형이나 시체 훼손 등 현재보다 잔인한 형벌을 실시하였다. [[18세기]] 서구 [[계몽주의]] 사상이 '인간 존엄성'을 강조하면서 사형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근대 형법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체사레 베카리아]]는 저서 《범죄와 형벌》에서 최초로 사형제 폐지를 주장<ref>{{뉴스 인용|제목=사형제도 존속인가 폐지인가? |url=http://www.upkorea.net/news/articleView.html?idxno=6612#07Pk |출판사=업코리아 |저자=김용완 |날짜=2005.-05.-23}}</ref>했고, 그 후 서구 사회에서 치열한 논쟁을 거치게 된다. 베카리아는 “인간은 오류 없는 존재일 수 없으므로 사형을 내릴 만큼 충분한 확실성이 결코 보장될 수 없다. 사형은 국민에 대한 국가의 전쟁이요, 법을 빙자한 살인이다.”라고 주장했고, 이러한 견해가 서구에서 점차 확산되었다.
 
1961년 [[국제사면위원회]](국제엠네스티)가 출범하였고, 1977년 12월 사형에 무조건 반대한다는 ‘스톡홀름 선언’을 발표하면서<ref>{{뉴스 인용|제목=‘사형수 감형’ 뜨거운 논란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5&aid=0000016222 |출판사=국민일보 |저자=고승욱 |날짜=2000-08-09}}</ref> 처음으로 16개국이 이 안에 서명하게 된다. [[2014년]]을 기준으로 전 세계 162개 국가가 사형제를 법률상 폐지하거나 10년 이상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실질적으로 폐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