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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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슬라비아는 동유럽·중앙유럽의 여타 [[공산주의 국가]]와 달리 [[바르샤바 조약]]에도 [[경제상호원조회의]]에도 가입하지 않았고, [[북대서양 조약기구]]에도 가입하지 않은 채 요시프 브로즈 티토의 지도 아래 [[비동맹 운동]] 노선을 걸었다. 그래서 티토의 자주적인 정치노선을 [[티토주의]]라고 부른다.
 
[[1971년]]부터 [[1973년]] 사이에 전개된 브레즈네프·코시긴 등 소련 수뇌부와 티토 간의 상호 교환 방문과 1977년 소련의 불간섭 원칙의 확인으로 양국 관계가 호전되었으며 1970년대 대서방 접근은 더욱 구체화되었다. 유고슬라비아는 기업의 영리·이윤제 등 [[시장경제]] 구조를 도입, 독자적인 공산주의 경제체제를 추진함으로써 1970년대에는 경제적 발전을 달성하기도 하였다. 이로써 유고슬라비아는 동유럽의남유럽의 가장 부유한 공산 국가로 발전했다.
 
[[1980년]] [[5월]] [[요시프 브로즈 티토]]의 사망과 함께 분열 조짐을 보이며 연방 간부 회의 집단 지도 체제로 전환하였다. 연방의회는 연방원과 공화국·자치주원의 양원제였다. [[1987년]] 공산당 서기장에 오른 [[슬로보단 밀로셰비치]](Slobodan Milosevic)가 '대(大)세르비아' 민족주의를 주창하면서 [[유고슬라비아 전쟁]]이 촉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