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닉슨"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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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교 정책 ===
[[1969년]] "[[아시아]] 각국은 내란이 발생하거나 침략을 받는 경우 스스로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였다. 1969년 1월 닉슨 행정부가 수립된 후 미소관계는 상호협조의 시대로 돌입했다. 선거기간 중 "자신이 당선되면 [[소련]]을 방문하겠다"고 강조한 닉슨 대통령은 취임연설에서 협상시대의 도래를 희망한 후 곧이어 서독, 영국, 이탈리아 등 서구 우방을 순방했다.(1969년 2월) 이 방문에서 닉슨 대통령은 대소협상에 관한 사전 의견교환을 하고 방소 준비를 착실히 진척시켰다.<ref>{{뉴스 인용 |url = 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2122900099204005&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72-12-29&officeId=00009&pageNo=4&printNo=2100&publishType=00020| 제목 = 이것이 미국이다<46> 외교 - 對蘇관계(하) | 날짜 = 1972-12-29 | 출판사 = 매일경제신문 |인용문= 1969년1월 「닉슨」行政府가 수립된 후 美蘇관계는 相互協調의 시대로 돌입했다. 선거기간 중 『자신이 당선되면 소련을 방문하겠다』고 강조한 「닉슨」대통령은 취임연설에서 協商時代의 到來를 희망한 후 곧이어 西独, 英, 伊 등 西歐友邦을 순방했다. (1969년 2월) 이 방문에서 「닉슨」대통령은 對蘇協商에 관한 事前意見交換을 하고 訪蘇준비를 착실히 진척시켰다. }}</ref> 외교 정책의 대담한 변화로 1971년 [[헨리 키신저]]가 1971년 8월 비밀리에 베이징을 방문해서 [[저우언라이]] 총리와 회담을 가졌고, 1972년에는 그 자신이 미국의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중화인민공화국|중공]]을 방문하여 [[마오쩌둥]] 과의 미․중 정상회담(2월 21일), [[저우언라이]]와 회담을 가져 훗날의 미국과 중국 사이의 국교 정상화의 길을 열었다.<ref>{{서적 인용 |저자=박승준 |제목=한국과 중국 100년 |꺾쇠표= 예 |연도= 2010|출판사=기파랑 |위치=서울 |id={{ISBN|978-89-91965-12-6}} |쪽= 17 |인용문 = 1971년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 대통령의 안보보좌관 헨리 키신저(Henry A. Kissinger)가 1971년 8월 비밀리에 베이징을 방문해서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와 회담을 가졌고, 그 결과 1972년 2월21일 닉슨 대통령과 마오쩌둥 간의 미․중 정상회담이 이뤄진 이후에는 점차로 외교적 기반을 상실해갔다.}}</ref> 또한 같은 해에 [[소련]]을 방문하여 냉전의 시대에서 대화의 시대로 옮기는 기수가 되었다. [[인도차이나 전쟁]]을 끝맺고자 [[베트남]]에서 [[미군]]을 철수하였다.<ref>{{글로벌세계대백과사전2}}</ref>
 
[[파일:Nixon leaving whitehouse.jpg|섬네일|210px|왼쪽|[[1974년]] [[제럴드 포드]] 미국 대통령이 닉슨 부부를 헬리콥터에 태워 보내려고 하는 장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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