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리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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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리그가 발족되기 전 일본 [[축구]]의 전체적인 환경은 빈약했다. 이미 1965년부터 시작된 [[일본 사커 리그]](JSL)라는 실업축구리그가 있었지만, 한 경기당 관객 동원수는 1,000~3,000명 정도였고 [[천황배 전일본 축구 선수권 대회|천황배]] 등을 포함한다면 연간 20~30만명 정도였다.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선발전은 지방의 소규모 경기장에서 열렸는데도 관중석이 채워지지 않을 정도였다. 최정상급 사회인 팀들도 연습 설비가 부족하고 경기장의 잔디도 겨울이 되면 노랗게 죽고 비가 오면 경기장이 물에 잠기는 일이 일상적이었다. 선수는 일부를 빼면 아마추어였고 회사원이었던 대부분은 일 때문에 축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축구 인프라는 전 세계적으로는 물론 [[아시아]]에서도 낮은 축에 들었다. 이런 상황을 타파하고 인기와 경기 수준의 향상을 이끌어내기 위해 프로화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져갔다. 하지만 대다수의 JSL 참가 팀으로부터 프로화는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다수였기 때문에 프로화 계획은 진전되지 않았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일본의 [[FIFA 월드컵]] 개최 노력에 힘입어 [[일본축구협회]]의 주도로 "일본 프로 축구 리그" 즉, J리그 발족이 결정되었다. 이윽고 [[1990년]] J리그 참가 조건의 세부사항이 결정되며 새로운 프로 축구 리그에 대한 규정이 정립되었다. 이에 따라 참가 클럽은 원칙적으로 클럽 명칭을 지역 명칭+애칭으로 하는 것으로 하고 기업 명칭은 배제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와함께 J리그 사무국은 한 두개의 구단의 과도한 인기에 의존하기보다는 지역 밀착에 의거한 평등한 구조로 리그를 운영하려고 했다. 이 때문에 당시 [[도쿄 베르디|요미우리 축구단]]과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구단주였던 [[:en:Tsuneo Watanabe|와타나베 쓰네오]]와 같은 [[일본 프로야구]]처럼 구단들이 기업명을 사용하기를 원하는 몇몇 구단의 수뇌부와 J리그 사무국간에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ref>{{저널 인용|제목=J리그의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목표로 해라! 베르디의 야망|연도=1994|volume= |쪽=23페이지|저널=J리그의 폭로 이야기|꺾쇠표=예}}</ref> 이러한 노력끝에 1992년 2월 J리그에 참가하는 열개의 클럽과 연고지가 발표되었고, [[일본 사커 리그]](JSL)은 91/92시즌을 마지막으로 폐지되었다. 그리고 개막에 앞서 전초전격의 [[리그컵]] 대회인 [[J리그컵|J리그 야마자키 나비스코 컵]] 대회가 열렸다.
 
=== J리그 개막 초기 (1993년 ~ 1996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