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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는 [[660년]] 신라와 함께 백제를 침략하였다. 백제는 [[나당연합|나당연합군]]의 공세에 밀려 멸망하고 만다.
 
백제를 멸망시킨 나당연합군은 그 여세를 몰아 고구려로 진격하였다. [[661년]] 1월 당군은 평양과 고구려의 변방을 공격하였다.<ref name="사기-661">《삼국사기》 권제22 고구려본기 제10 보장왕 20년(661)</ref> 백제의 멸망으로 다급함을 느낀 고구려는 [[662년]] 3월 일본에 사신을 파견했다. 이에 왜는 장군을 보내 옛 백제 지역의 소유성(疏留城)<ref group="주">[[주류성]]으로 추정된다</ref>에 병력을 주둔시켰다. 이 때문에 당군은 고구려의 남쪽 경계를 침략하지 못하고 신라도 고구려 서쪽의 성루를 함락시키지 못했다.<ref name="일본-662">《일본서기》 권27 天命開別天皇 天智天皇 원년(662)</ref> 즉, 한반도 남부에 주둔해 있던 당군과 신라군이 고구려의 남서쪽 국경을 공격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처럼 고구려의 대일본 외교는 위력을 발휘했다.<ref>{{서적 인용 |저자=서영교 |제목= 신라인 이야기 |꺾쇠표= 예 |연도= 2009 |출판사=살림 |위치=|id={{ISBN|9788952210739}} |쪽= 134 |인용문 = 고구려는 일본에도 손을 내밀었다. 660년에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치자 다급함을 느낀 고구려는 일본에 사신들을 파견했다. 『일본서기』〔권27, 덴지천황 원년(662) 3월조〕에는 이와 같은 기록이 있다. “고(구)려가 우리에 구원을 요청했다. 우리는 장군을 보내 백제 지역의 소유성에 병력을 주둔시켰다. 이 때문에 당군은 고(구)려의 남쪽 경계를 침략하지 못하고 신라도 고(구)려 서쪽의 성루를 함락시키지 못했다.” 고구려의 대일본 외교는 위력을 발휘했다. 한반도 남부에 주둔해 있던 당군과 신라군이 고구려의 남서쪽 국경을 공격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ref> 또한 백제 부흥군이 나당연합군의 후미를 치는 바람에 신라군이 다시 남진하여 백제부흥군과 싸워야 했으며, 그 상황을 이용하여 고구려는 서북 변방에 병력을 집결시켜 당나라군을 격퇴하였다.{{출처|날짜=2018-06-29}}
 
동년 4월 당나라는 다시금 대군을 거느리고 수륙양공 작전을 구사하며 평양성을 향해 진군하였다. 하지만 이군구(李君球) 등의 신하가 출전을 반대하였고, 고종이 이에 따라 고구려 원정을 중지하였다.<ref name="사기-6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