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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대북(代北, [[산시성]] 지역)의 [[유목 민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무용이 뛰어나고 신망이 두터웠는데, [[이극용]]의 양자가 되어, '''이사원'''(李嗣源)으로 이름을 고치고 절도사와 중서령 등을 지냈다.<ref>샹관핑, 《중국사 열전 황제》 차효진 역, 달과소, 2008, p.422, {{ISBN|9788991223219}}</ref> [[거란족]] 토벌이나 [[후량]] 토벌 등에 있어 활약하여, 두각을 나타냈다. 이윽고, 이극용의 친자 [[이존욱|장종]](莊宗)이 술에 빠져 점차 정치를 돌아보지 않게 되자, 각지에서 반란이 발발하였다. 무장들이 장종을 살해하고 그를 황제로 추대하였다. 이사원은 처음에는 이를 사양하였으나 세 번을 청하자 [[926년]] 60세의 나이로 즉위하였다.<ref>증선지, 《십팔사략》, 소준섭 역, 미래사, 2004, p.252, {{ISBN|8970872795}}</ref><ref name="샹관핑">샹관핑, p.270</ref> 이사원은 수도를 [[카이펑|개봉]]에 정하였다. 그는 아는 글자가 거의 없어서 모든 상주문을 모사 [[안중회|안중회(安重誨)]]에게 읽어 달라고 하였으며 고문 겸 재상으로 [[풍도 (정치가)|풍도(馮道)]]를 등용하였다.<ref>진얼원, 《중국을 말한다 10 》 김춘택 역, 신원문화사, 2008, p.158, {{ISBN|9788935914494}}</ref>
그러나 이사원은 늦은 나이에 즉위한 탓에 분별력이 흐려져 자신의 측근이었던 안중회와 임환을 죽였다.<ref name="샹관핑"/> 또한 본인이 무장에게 추대된 터라 즉위 이후부터 무장들을 우대하여 권력을 주었다. 이것은 무장들의 오만과 전횡을 불러일으켜, [[933년]]에 명종이 죽은 후 3년 뒤에 후당이 멸망하는 원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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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성덕군 절도사 (후당)]]
[[분류:오대 십국 시대의 중서령]]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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